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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가 9월17일 개막해 9월26일 막을 내렸다. 올해로 30회째. 열기는 예상보다 더 뜨거웠다. 언론용 게스트 티켓은 온라인 예매 시작 직후 동이 났다. 일반 티켓도 마찬가지였다. 화제작은 표를 구하는 게 불가능에 가까웠고 현장 매표소는 종일 북적였다. 뒤늦게 취소 표라도 구하려는 관객들이 길게 늘어섰다.


주최 측은 일찌감치 게스트의 규모와 이름값 면에서 ‘최대, 역대급’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개막작은 〈어쩔수가없다〉. 박찬욱 감독이 영화제를 찾았다. 주연배우 이병헌이 개막식을 진행했다. 국내뿐만 아니야마토 2 온라인 게임
라 해외 배우 량차오웨이(양조위), 밀라 요보비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등이 부산을 찾아 열광적 반응을 끌어냈다. 박가언 수석 프로그래머는 한 매체와 인터뷰하면서 “이 정도 규모의 초청은 처음이다. 여러 해 누적된 (스타들과의) 접촉과 제30회라는 계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미뤄진 일이 동시에 결실을 본 결과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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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들만의 힘은 아니었다. 배우들이 무대에 나선 ‘관객과 대화(GV)’나 기자회견 외에, 영화만 상영하는 곳도 대부분 관객이 가득했다. 밤 12시에 시작해 공포영화를 상영하는 ‘미드나잇 패션’ 섹션도 큰 극장이 가득 찼다. 게스트 배지를 단 취재진은 소수였고, 삼삼오오 함께 극장을 찾은 젊은 여성들이 주로 객석을 채웠다.오상자이엘 주식
이들은 함께 사진을 찍고 영화도서관을 구경했다. 유명 배우를 구경하는 걸 넘어 영화제 참여 경험 전반을 즐기는 듯했다.




9월22일 배우 이진욱, 임선애 감독, 배우 금새록·유지태씨 (왼쪽부터)가 부산 영화의전당 포토콜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시사I남성 주식
N 박미소



일각에서는 올해 영화제의 의미를 세대교체에서 찾는다. 2001년부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일한 박도신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 겸 집행위원장 직무대행이 사임했다. 남동철 전 수석 프로그래머도 이탈했다. 2023년 허문영 전 집행위원장 사임 이후 영화제는 후임자바닥종목
를 찾는 데 난항을 겪어왔다. 정한석 집행위원장, 박가언 수석 프로그래머 체제로 치르는 첫 영화제다. ‘지석상’이 폐지된 건 논란거리다. 고 김지석 수석 프로그래머를 기리기 위해 2017년 창설한 상이다. 집행부의 상 통폐합 과정에서 사라졌다.

경쟁 부문 신설과 OTT 포용

새 집행부는 30회를 맞은 부산국제영화제의 향방을 정하는, 중요한 변화를 꾀했다. 경쟁 부문 섹션 도입이다. 주요 작품 14편을 초청해 5개 부문 ‘부산 어워드’를 시상했다. 30년 동안 쌓인 노하우와 자신감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 부문 초청작을 ‘아시아 작품’으로 한정한 점에서 평가가 엇갈린다. ‘아시아 최고 영화제’ 입지를 다지려 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세계적 영화제와 경쟁하는 길을 지레 포기한다고 읽을 법도 하다. 경쟁 부문에 오른 아시아 작품 가운데에서도 배우 수치(서기)의 감독 데뷔작 〈소녀〉 등 몇몇 작품은 월드 프리미어(해당 영화제에서 최초로 상영되는 영화)가 아니었다.


영화계의 큰 화두이자 난제인 OTT에 대한 태도도 주목받는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넷플릭스 영화 〈전, 란〉을 지난해 개막작으로 택해 논란을 겪은 바 있다. 올해도 영화제 집행부는 OTT 배척이 아니라 포용으로 가닥을 잡았다. 10월 공개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굿뉴스〉 〈프랑켄슈타인〉이 갈라 프레젠테이션 초청작에 올랐다. 2021년 신설한 온스크린 섹션을 유지했다. 이 부문 6작품 모두 넷플릭스·디즈니플러스·티빙 등 OTT에서 방영될 작품이다. 세계적 흥행을 기록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매기 강 감독도 초청돼 관객과 ‘오픈 토크’를 나눴다. 지난 4월29일 정한석 집행위원장의 기자회견에 따르면, 영화제의 장기적 방향도 ‘OTT 수용’에 가깝다. “한국 영화산업이 위기에 빠져 있기 때문에 우려는 이해하고 이런 논의가 시급하다. 다만 영화계에서 오랜 시간 보수적이고 전통적으로 일해온 나도 매일 밤 OTT를 본다. 이미 한국 문화에 폭넓게 자리잡은 OTT를 배제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다.”


오픈토크가 열리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0/14/sisain/20251014064404210ptpx.jpg" data-org-width="1280" dmcf-mid="u1huJtCnnq"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0/14/sisain/20251014064404210ptpx.jpg" width="658">

9월21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매기 강 감독이 참석하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오픈토크가 열리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화려한 영화제의 한편, 한국·아시아 영화의 현재와 미래를 논하는 포럼에서도 OTT는 중요한 논제였다. 9월21일 영화산업 위기 극복 영화인연대가 주최한 ‘멸종위기 영화 K무비, 다음 10년을 위한 대화’ 포럼에서는 산업의 일상적 위기가 OTT와 맞물려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영화 〈유령〉 연출부 출신인 김보경씨는 “그간 OTT는 표준계약서의 회색지대였다. 스태프들은 ‘혼자 있는 시간은 자는 시간과 화장실 가는 시간뿐’이라고 자조한다. 콘텐츠는 사람의 창의성에 기반한다.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제3의 개입자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양준영 키노라이츠 대표는 “OTT와 하이라이트 시대에 극장은 매력을 잃고 있다. 티켓 값을 아무리 내려도 경쟁력은 부족하다. 좋은 콘텐츠와 영화관만의 경험을 브랜드화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모두가 ‘극장 위기의 시대’를 이야기하는 와중에 크게 흥행한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가운데, 특히 주목할 만한 경쟁 부문 작품 14편 중 3편을 소개한다. 부산국제영화제가 나아가려는 길과 동시대 아시아 영화들이 주목하는 바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저마다 다른 배경과 주제를 담았다. 그러나 아시아와 세계의 보편성 역시 비친다.


〈지우러 가는 길〉(유재인 감독,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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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우러 가는 길>.



고등학생 윤지가 임신했다. 아이 아버지인 담임교사는 실종됐다. 학교가 혼란에 빠진 가운데 학생은 임신중지를 위해 홀로 동분서주한다. 기숙사 룸메이트 경선의 돈을 훔쳐 불법 낙태약을 샀지만, 복통만 겪었을 뿐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두 사람이 겪은 사건들을 그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는 전형적이지 않다. 임신중지의 동기부터 그렇다. 학생은 ‘선생님의 감정’에 초점을 맞췄다. “내가 낳겠다고 해서 선생님이 도망갔어. 낙태했다고 하면 돌아올 거야(윤지).” 휴대전화에 교사 아내의 번호를 ‘그여자’라는 이름으로 저장하고 은근히 (이후에는 대놓고) 적의를 드러낸다. 선생님이 시신으로 돌아오자 윤지의 혼란은 점점 커진다. 빈소에서 조의금을 훔쳐 동물병원에서 중절수술을 하려 했다. 그러나 막상 돈을 손에 넣자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한다. 말리는 경선에게 모진 말을 뱉고 미혼모 지원센터로 향했다.


관객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자문하게 만드는 영화다. 나라면, 내 친구라면 이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문제가 관념적 가치 논쟁을 넘어, 현실에 발붙이고 사는 사람들이 처한 실제 상황이라는 점을 체감하게 된다. 누구라도 점잖게 행동하기 어려운 상황, 인물 다수가 극단적인 말과 행동을 한다. 이야기는 ‘자기결정권 강조’나 ‘생명 존중’과 같은 교조적 메시지를 설파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매 순간 흔들리며 시행착오를 거듭하나 끊임없이 더 나은 선택을 도모하려는 몸부림을, 있는 그대로 그렸다.


그 결과 임신중지 논쟁보다 더 무거운 질문을 관객은 떠안게 된다. 유일하게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메시지, ‘책임’이다. 미혼모 지원센터 관계자의 입을 빌려 영화는 말한다. “마음껏 잘해주는 것보다 책임질 수 있을 정도만 잘해주는 게 더 큰 사랑 아닐까?” 담임교사와 그의 아내, 경선의 어머니 등 윤지와 경선이 목격한 인물들의 각기 다른 행동이 이 질문을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윤지의 마지막 ‘선택’에 더 공감할 수 있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각 인물을 선악으로 일도양단하지 않는 게 영화의 덕목이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도 흐린다. 다만 더 책임감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 그들의 행동이 부르는 파장을 스케치한다. 입장에 따라 여러 방식으로 읽을 수 있는 영화다. 특히 결말부 윤지와 경선의 행동은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허락되지 않은〉(하산 나제르 감독, 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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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허락되지 않은>.



막이 오르면 화면 속 자막이 관객을 긴장시킨다. “신변 보호를 위해 제작진·출연자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습니다.” 영국에 사는 이란 감독이 조국으로 돌아와 만들었다. 이란 어린이들을 인터뷰하는 형식의 영화다.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의 말과 대비되게도 몹시 위험한, 당국의 허락을 받을 수 없는 영화다.


겉보기에 아이들과의 인터뷰 내용은 그리 특별하지 않다. 영화 속 감독(실제 감독이 아니라 가상의 캐릭터다)은 아이들에게 각각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니?’ ‘왜 배우가 되고 싶어?’ ‘촬영장에 마음에 드는 아이가 있니?’와 같은 ‘개인적인’ 질문을 던진다. 순진한 답변들이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다 불쑥불쑥 억압된 사회상을 짐작할 만한 이야기가 튀어나온다. “커서도 히잡을 안 쓰는 건 부끄러운 거예요”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 이란을 떠나고 싶어요”. 한 매체 인터뷰에서 하산 나제르 감독은 “인터뷰 답변은 시나리오가 아니라 즉흥적으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배우가 아닌 이란 아이들이 ‘실제 느끼는 바’가 어떤지 짐작하게 한다.


아이들과의 인터뷰 외에 이 영화에는 한 가지 줄기가 더 있다. 여성 조감독 캐릭터의 가정사다. 그와 남편은 불화를 겪고 갈라서려 한다. 본격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남편이 간간이 표출하는 ‘전통적’ 가치관이 한 원인이다. 아내는 이란을 떠나고 싶어 하며 자기 일을 계속하고자 한다. 남편은 두 가지 점 모두 불만이다. 이혼 조정 법정의 판사는 은근히 남편의 편을 든다. 아내는 절망한다. “도대체 이곳 판사 중에 미혼 여성은 없느냐”라고 항의하지만 사실상 쫓겨난다.


‘어린이들의 인터뷰와 조감독의 가정생활’ 서사는 후반부에 하나로 합쳐진다. 영화제작 허가를 받지 않았다며 감독을 추궁하는 이가 조감독의 남편이다. 조감독의 남편이자 권력기관의 관계자인 그는, 절차상 문제를 지적하는 것과 함께 개인적 비난도 얹는다. “왜 아내를 조감독으로 삼았죠? 아내가 기혼 여성인 걸 알면서도 그랬습니까?”라는, 도덕적 비판이다. 이 인물을 통해 영화는 이란의 반민주적 권력이 가부장제와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국가권력의 억압’이라는 주제 외에, 이 영화는 어린이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인터뷰에서는 어린 시절이라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상상과, 그럼에도 교육을 통해 익힐 수밖에 없었던 자기검열이 함께 묻어나온다. 아이를 소유물처럼 여기고 특정한 태도를 강제하는 부모를 비판한다. 딸의 영화 촬영 사실을 뒤늦게 안 아버지가 아이를 강제로 스쿠터에 태워 끌고 가는 장면이 강조된다. 덜덜거리며 비탈길을 넘는 스쿠터는 그리 빠르지 않았지만, 아이 어머니를 비롯한 누구도 끝까지 멈춰 세우지는 못한다. “우리 인생이 어린 시절을 반영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어린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것”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의 인터뷰에서 주로 집중하는 주제는 이성과 로맨스에 대한 환상이다. 조감독과 그 남편의 대사를 통해 어린 시절 가졌던 이상이 판판이 무너지는 장면을 보여준다. 국가가 개인에게, 어른이 아이에게 가하는 억압이 사람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초래하는지 보여주는 듯하다.


〈왼손잡이 소녀〉(쩌우스칭 감독, 타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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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왼손잡이 소녀>.



세 모녀의 이야기다. 엄마는 야시장에서 작은 식당을 한다. 맏딸은 ‘빈랑(중독성 있는 간식)’ 가게에서 일한다. 어린 막내딸은 학교에 갔다가 야시장에서 엄마 일을 돕기도 한다. 엄마와 맏딸은 좀처럼 웃을 일이 없다. 경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내몰려 있다.


모녀는 곤궁하다. 엄마는 월세를 내지 못해 야시장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다. 가족을 배신하고 도망간 남편이 한 원인이다. 큰 병에 걸린 남편의 병원비와 장례비에 수입을 써버린다. 맏딸은 자괴감에 시달린다. 학창 시절 성적은 좋았지만 집안 사정으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해 친구들에게 열패감을 가진다. 남자친구이자 가게 사장은 유부남으로 밝혀지고, 임신까지 한다.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알 수 없는 불행이 연이어 가족을 덮친다.


‘왼손잡이 소녀’는 막내딸이다. 미신을 믿는 외할아버지는 “왼손은 악마의 손”이라며 쓰지 못하게 강요한다. 소녀는 이 말을 뒤틀린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갖고 싶은 물건을 왼손으로 잔뜩 훔치고, ‘이건 내가 아니라 악마가 한 일’이라 믿은 것. 그 밖에도 막내딸이 ‘왼손으로 한 일’들은 기이한 파장을 일으키며 가족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기본적으로 영화는 빈곤 문제를 중심에 둔다. 돈이 없어서 비겁해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비극은 대를 잇는다. 남동생만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손을 벌리는 한편, 딸에게는 ‘볼멘소리 하려면 네가 돈 벌어’라고 쏘아붙인다. 할머니는 비자와 관련된 불법적인 일을 하다 감옥에 갈 위기에 처하고, 손녀는 성 판매 뉘앙스가 있는 일을 택한다.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에서 공유하는 ‘체면’ 문화가 엿보인다. 가족을 저버린 남편의 장례를 치르는 아내, 부모에게 손 벌리는 ‘출가외인’ 언니를 멸시하는 여동생, 출세한 아이만 자식 취급하는 어머니까지. 작품 후반부에 몇 가지 사건이 터지면서 간신히 유지하던 이들의 체면은 하나둘 부스러진다. 그 중심에 왼손잡이 소녀가 있다. 막바지, 체면 지키는 걸 완전히 포기한 듯한 주인공 모녀가 폭로하는 ‘반전’도 흥미롭다. 그런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체면의 압박을 벗게 된 가족은 도리어 편안한 웃음을 짓는다.


〈플로리다 프로젝트〉 등에서 여러 차례 손발을 맞춘 션 베이커 감독이 연출로 참여했다. 칸 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상영된 작품이다. 10월30일 국내 개봉 예정이다.

부산·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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