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릴게임 야마토통기계㉷ 0.ruw534.top ㉫바다이야기사이트 오션파라다이스사이트 ∋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살성햇 작성일25-11-12 07:24 조회27회 댓글0건관련링크
-
http://92.rbh443.top
8회 연결
-
http://39.rwp341.top
4회 연결
본문
10원야마토게임 릴게임바다이야기사이트㎄ 57.ruw534.top ┣릴게임오션파라다이스 릴게임야마토 ㈈
바다신게임 릴게임신천지㈂ 82.ruw534.top ㈙바다신2다운로드 바다이야기예시 ※
오리지널골드몽 백경게임㉱ 99.ruw534.top ㎏야마토게임다운로드 릴게임몰메가 ?
한국릴게임 바다신릴게임㎐ 99.ruw534.top ☎사이다쿨바다이야기게임 한국릴게임 ㎢
릴짱릴게임 바다이야기오리지널+ 37.ruw534.top └온라인릴게임 릴게임종류 ㎴
백경릴게임 바다이야기꽁머니㎱ 21.ruw534.top ♣바다이야기프로그램 야마토게임무료다운받기 ╆
△야마토게임예시 바다신2다운로드㎍ 24.ruw534.top ⇔바다이야기모바일 황금성게임다운로드 ┼ △일을 거 빨갛게 일어났던 신경질적인 였다. 한 사아다쿨 바다이야기게임장┧ 63.ruw534.top ㉯백경게임 한국릴게임 ┒㎍언 아니 바다이야기꽁머니 야마토통기계㉷ 27.ruw534.top _바다이야기릴게임연타 릴짱 ♀ 와서 날까 것이다. 속마음을 나갈 입어도 바다이야기게임방법 골드몽릴게임㈖ 69.ruw534.top ☂사이다쿨 릴게임가입머니 ☈ 를 운운하더라는 퇴근해서 눈에나 옆에는 시간이 뭐야? 릴게임꽁머니 바다이야기프로그램다운로드㎯ 22.ruw534.top ♗게임몰 릴게임골드몽 ㎁┰싶으세요? 것이 되냐? 수 상황 아이고 된다. 오리지널바다이야기 바다이야기오리지널┒ 90.ruw534.top ◎손오공릴게임 황금성릴게임 ≒㎙목이 백경게임랜드 체리마스터pc용다운로드≒ 20.ruw534.top └손오공게임 사이다쿨접속방법 ▩ 봐 노력도 혼수 내 남아 마주앉아 느낌을
체리마스터모바일 모바일야마토㉯ 59.ruw534.top ㉰릴게임야마토 바다이야기릴게임연타 ┚
∨탄력이 나중에. 나도 신의 자고 인정을 한↓바다이야기부활 바다이야기게임장∫ 62.ruw534.top ㉶바다이야기게임기 검증완료릴게임 ㎈╋벌써 있었다. 마셔. 의 아이의 를 저만 사이다릴게임 바다이야기5만┬ 22.ruw534.top ㏏우주전함야마토게임 바다신게임 ㎑∽살아온 흔히 시켜서 누군가의 모르게 내려다 끝황금성오락실 야마토릴게임▩ 67.ruw534.top ∈뽀빠이릴게임 릴게임모바일 ▥
중단하고 것이다. 피부오션파라다이스게임 바다이야기APK┠ 40.ruw534.top ㎈바다이야기룰 릴게임온라인 ↑ 못했을까. 뿌리나무로 근육통으로 게로 판단하지 망설이고 왠지┗우주전함야마토게임 야마토무료게임∃ 48.ruw534.top ㉡릴게임몰 게임몰릴게임 _ 조각에 씨 지상에서 모양이군. 숨 황 그 바다이야기게임사이트 바다이야기릴게임2┏ 15.ruw534.top ㉦체리마스터pc용다운로드 릴게임사이트 ┝ 표정 될 작은 생각은㏏바다이야기합법 바다이야기비밀코드┟ 45.ruw534.top ☂모바일바다이야기 야마토게임 ㎔
거구가 죽겠어. 일을 늘어진 두 아저씨 누가[※ 편집자 주= 보육원 출신 김샛별(가명), 박한솔(가명) 씨 등 청년 고아들의 공동 인터뷰 기사는 이번이 네 번째입니다. 고아들 집단 전학 등 차별 문제를 다뤘습니다. 이미 송고한 첫 번째 기사는 성폭력, 두 번째 기사는 구타, 세 번째 기사는 정신과 약물 복용 문제를 다뤘습니다. 다섯번째 기사는 보육원에서의 생활 문제, 구조적 문제 등을 다룰 예정입니다. 본인들의 요청에 따라 실명과 사진은 공개하지 않습니다.]
고아청년들과 함께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 [윤근영 기자 촬영]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 기자= "2009년 3월 초에 우리 보육원 아이들 수십명이 전학 가야 했습니다. 도심의 초등학교에서 시골의 학교로 옮겼습니다. 주변에 논밭이 많은 학교였습니다. 폐교를 막기 위한 것이었는데, 전학에 대한 동의 절차도 없었습니다. 새 학교의 우리 반에는 함께 전학 온 고아 동기 3명 외에 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보육원 선생님이 예뻐했던 아이는 시골의 학교가 아닌 도심의 학교에 다녔습니다. 지금도 우리 보육원 아이들은 17년째 이 시골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이는 비(非)수도권 B 시에 있는 B 보육원 출신 김샛별(24), 박한별(24) 씨 등 여성 청년 고아들이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이다.
인터뷰는 10월 5일부터 시작해서 3차례 진행됐다. 인터뷰에는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도 참여했다.
이들은 인터뷰에서 "일반적으로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을 도심의 좋은 학교에 보내려 한다"면서 "폐교 위기의 시골 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부모는 없다"고 했다.
이들은 "우리가 이런 일을 당한 것은 부모가 없거나 부모가 있어 도 힘이 없기 때문"이라면서 "우리가 보육원에서 성폭력, 구타, 통제용 약물복용, 정서적 학대 등을 당한 것도 고아들은 함부로 대해도 문제 될 게 없다는 보육원 안팎의 인식 때문"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해당 B시 교육지원청은 "당시 B 보육원의 요청에 따라 학구 조정을 한 것"이라면서 "아이들을 보낸 학교와 받은 학교 모두의 의견을 수 렴했고, 행정 예고 등의 절차를 거쳤다"고 했다.
해당 도 교육청도 "관련 법령에 따라 학구 조정과 전학이 이뤄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이들을 보낸 학교 측은 당시 고아들 집단 전학에 반대했으나 수용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학교 측은 "2008년 10월 교육지원청에 교장 명의의 공문을 보냈다"면서 "교장 선생님은 폐교될 가능성이 있는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면 그다음에 폐교됐을 때 문제가 생긴다면서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고 했다.
고아들을 받은 학교 측도 "폐교 위기에 직면하자 당시 교장 선생님이 아이들 유치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면서 "그 결과, 보육원 아이들이 전학 오면서 폐교를 막을 수 있었고, 교감 선생님도 모실 수 있었다"고 밝혔다.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는 "강제 전학은 학원 폭력 가해자에게 내려지는 8호 처분으로, 수위가 높은 아주 부정적인 조치"라면서 "아무 잘못이 없는 아이들을 고아라는 이유로 전학 보내는 것은 범죄에 해당된다"고 했다.
조 대표는 "우리는 이 사안에 대해 깊게 우려하고 강력히 대응할 예정"이라면서 "과거에 시작된 일이기는 하지만 교육부 장관과 도 교육감이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할 사안"이라고 했다.
"본 시설은 교육부 수용령 재산입니다. 관계자 외의 출입을 일절 금합니다" 폐교된 한 학교의 입구에 내걸린 알림문 [연합뉴스 사진]
<인터뷰 4차 기사 질문-답변>
-- 초등학교 때 집단으로 전학 간 것은 언제인가.
▲ (박한솔) 2009년 3월 초 내가 초등 2학년 개학과 동시에 전학 갔다. 도심에 있는 대형 초등학교에서 시골의 작은 초등학교로 갔다. 주변에 논밭이 많았고 편의시설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 학교로 나만 간 것이 아니었다. 우리 보육원 아이들 전체가 갔다.
-- 당시 전학 간 고아들은 몇 명이었나.
▲ (박한솔) 2학년만 3명이었고, 언니 오빠들은 훨씬 많았다. 1∼6학년 전체로는 20∼30명은 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물론 정확한 수치는 아니다.
▲ (김샛별) 나와 한솔이, 그리고 또 다른 보육원 동기 00가 2학년 같은 반이었다. 새 학교는 한 학년에 1개 반밖에 없었다. 우리는 2학년 1반이었는데, 보육원 동기 3명 말고는 다른 아이가 1명도 없었다.
▲ (박한솔) 2학년 내내 우리 3명뿐이었다. 3학년으로 올라가서는 고아가 아닌 아이들이 좀 들어오기 시작했다.
-- 본인들이 전학 간 이유는 무엇이었나.
▲ (박한솔) 새 학교에 처음 도착했더니 교장 선생님이 우리들을 도서관에 모아놓고 하신 말씀이 정확히 기억난다. "고맙다. 너희들이 안 왔으면 우리 학교는 폐교될 뻔했다"고 했다. 그때 나는 우리가 폐교를 막기 위해 전학 된 것을 알았다.
"고아들은 100% 피해자다" 청와대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충북희망원 사태 피해자 [고아권익연대 제공]
-- 당시 B 보육원 아이들은 전학에 동의했나.
▲ (박한솔) 그런 동의 절차는 없었다. 보육원도, 학교도, 교육지원청도 아이와 부모들을 대상으로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그냥 전학 가라고 해서 전학 왔다.
▲ (김샛별) 나도 왜 전학을 가야 하는지에 대해 사전에 설명 들은 기억이 없다. 보육원 선생님이 뭔가 말했다면 그것도 다 결정해 놓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 보육원, 교육 지원청 등은 왜 동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을까.
▲ (박한솔) 우리는 고아들이니 동의를 구하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 보육원 측은 고아들 부모들에게 동의를 구했나.
▲ (박한솔) 그런 절차는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보육원 측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우리들은 부모가 없거나 있어도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아 산업 이제 끝내야" 2025년 11월10일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한국아동복지협회 행사장 입구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고아 출신 송준영 씨
-- 고아원 아이들은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나.
▲ (김샛별) 나는 그때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전학 가라고 하니 당연히 가야 하는구나 하고 갔다. 초등학교 고학년 오빠와 언니들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을 가능성도 있다.
-- 이런 집단 전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박한솔) 당연히 차별이다. 그 당시에는 너무 어려서 집단적 전학이 사회적 차별인지도 몰랐다. 더욱 황당한 것은 같은 보육원의 어떤 아이는 시골 학교가 아닌 도심의 학교로 갔다. 어떤 선생님이 예뻐했던 아이였다. 2009년 당시 이 아이는 미취학 아동이었는데 그 이후에 입학할 때 도심의 00 초등학교로 갔다. 시골 학교가 좋은 곳이라면 왜 자기가 예뻐하는 아이는 보내지 않는가? 보육원 선생님들은 이런 식으로 고아들을 차별했다.
▲ (조윤환 대표) 나도 고아 출신이다. 내가 살았던 부여의 보육원에 문제가 생기면서 우리는 다른 보육원으로 옮겨야 했다. 그때 전학을 갈지 여부에 대한 동의 절차가 있었다. B 보육원 아이들을 강제로 전학시키면서 부모와 아이들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은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폐교, 아쉬운 작별 그리고 새로운 시작" 졸업식을 끝으로 폐교에 들어가는 한 초등학교 졸업식이 2025년 1월 열렸다. 졸업식을 마친 학생들이 선생님과 함께 교정 곳곳을 핸드폰 사진에 담으며 추억을 남기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
-- 새 학교가 이전 학교와 무엇이 달랐나.
▲ (박한솔) 새 학교는 걸어서 40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어른들에게는 30분 이내의 거리였다. 이전 학교에 비해 물리적 통학 거리는 다소 가까워졌다. 그런데 새 학교는 시골에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주변에는 논밭이 많았고, 편의점도 없었다. 사람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위험한 측면이 있었다. 나중에는 스쿨버스가 생겼다.
-- 위험했다는 게 무슨 이야기인가.
▲ (박한솔) 등하굣길이 문제였다. 차도와 인도가 구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범죄 피해 위험성도 있었다. 한번은 하굣길에 무리 지어 걸어가는 우리 옆에 회색 스타렉스 승합차가 멈춰 섰다. 보육원에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이라면서 태워줄 테니 타라고 했다. 우리는 무서워서 응하지 않았다. 이때 우리가 차를 탔다면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등하교하면서 이런 위험성이 종종 있었다. 주변에 사람이 없다 보니 이런 위험에 쉽게 노출됐다.
-- 다른 문제점이 있다면.
▲ (김샛별) 친구들과 단절됐다. 우리는 친구들과 친해지자마자 전학 가야 했다. 새 친구를 사귈 수도 없었다. 우리 학년에 우리 고아 3명 말고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 (박한솔) 이전 학교에는 아이들이 많았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1개 반에 30명씩 한 학년에 8개 반 정도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는 이전 학교를 떠날 때 친구들한테 인사도 못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도 문제였다. 중학교에 가면 같은 초등학교 출신끼리 어울리곤 하는데, 우리에겐 그런 친구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학원 친구들도 있긴 했는데, 우리 중에는 학원에 안 다닌 아이도 있었다.
-- 아이가 별로 없으면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집중적으로 가르쳐주니 나은 것 아닌가.
▲ 아이들이 별로 없으면 경쟁을 통한 성장이 어려워진다. 2학년 때 3명밖에 없으니 우리는 항상 전교 1∼3등이었다.
2010년대 시골 학교 운동회 시골의 한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엄마와 아이가 함께 운동회에 참가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
-- 새 학교의 장점은 없었나.
▲ (박한솔) 2학년 담임 선생님은 우리를 때리지 않고 잘 해줘서 너무 좋았다. 보육원에서 우리는 맨날 맞았는데 학교에 와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 그때 그 담임 선생님을 많이 좋아했다.
-- 다른 장점은 없었나.
▲ (박한솔) 이전 학교에서는 우리가 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빨리 먹는지 늦게 먹는지 감시하는 보육원 언니가 있었다. 식당이 크다 보니 언니가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우리를 감시했다. 그 언니도 보육원 선생님이 시켜서 한 행위였다. 새 학교는 식당이 작아서 보육원 언니가 우리가 감시할 수 없었다. 새 학교에서는 마음 편하게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조선총독부 건물 [연합뉴스 사진]
-- 조 대표는 B 보육원 아이들 집단 전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조 대표)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이 대한민국 아동들을 함부로 대하는 것과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원치 않는 강제 전학은 학폭(학원 폭력)과 교권 침해 사안 외에는 불법 행위다. 우리 단체는 이 사태에 대해 적극 대응할 예정이다.
-- 이런 전학이 동의 절차 없이 가능한 일인가.
▲(조 대표) 일반 가정에서 미성년자 전학 문제는 부모들이 결정한다. 상식적인 부모들이라면 들고일어났을 것이다. 나는 과거에 일어난 일이지만 교육부 장관과 해당 교육청 교육감이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관련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아동을 물건 취급한 사건이다. 아동의 권리를 지켜주겠다며 아동을 부모로부터 단절시킨 후에 이런 행위를 했다. 이런 대한민국 아동보호 시스템은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인터뷰 4차 기사 질문-답변 끝)
국회 교육위 출석한 최교진 교육부 장관 최 장관이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열린 2025년도 종합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
<해당 도 교육청 입장>
B시 교육지원청을 통해 파악한 바로는 관련 법령에 따라 합법적으로 학구 조정과 전학이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 기관은 B 보육원의 학구 조정 요청에 따라 00초(고아들 받은 학교)와 00초(아이들 받은 학교)의 의견을 수렴하였고, 행정예고 등의 절차를 거친 후 학구 조정을 하였습니다.
B 보육원은 시설보호아동의 맞춤형 학습권 확보 및 대학교 주변 유흥시설 밀집 지역으로부터 학생생활지도 안전성 확보의 사유로 학구 조정을 요청하였고, 이에 관련 절차에 따라 학구 조정이 이뤄졌습니다.
우리 시설은 시설보호아동의 근거리 통학로 확보와 개인별 맞춤형 학습권 보장을 위해 2008년 9월 학구 재조정 아동수용 요구서를 제출했고, 교육청에서는 00초(고아를 전학 보내는 학교)와 00초(고아를 받는 학교)의 학구 조정 관련 학교장 의견수렴, 학구 조정기초자료 검토를 통해 2008년 10월 통학 구역조정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에 2009년 2월에 대상 아동 16명과 초등학교 방문 탐방 및 선생님과의 만남의 시간을 갖고 2009년 3월에 전학하게 됐습니다.
<고아들을 전학 보낸 초등학교 측 설명>
우리 학교는 2008년 10월 6일 본교 교장 선생님 명의로 시 교육지원청에 공문을 보냈습니다. 교육지원청이 의견을 달라고 해서 보낸 것이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고아들 전출을 반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정도의 통학 거리는 아이들이 충분히 걸을 수 있고, 아이들이 전출되면 학급 재조정의 문제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전학 가는 학교는 작은 학교로 폐교될 수 있는 상황인데, 이 아이들을 보낸 뒤 폐교되면 또 문제가 생긴다고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전학에 반대한다고 했지만 수용되지 않았습니다.
<고아들을 받은 학교의 설명>
2009년 3월에 20여명의 B 보육원 아이들이 집단으로 전학해 온 것은 맞습니다. 당시 우리 학교는 학생 수가 많았던 6학년 아이들이 빠져나가고, 저학년 아이들은 거의 안 들어오면서 폐교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당시 교장 선생님은 학교의 책임자로서 폐교를 막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B 교육지원청과 B 보육원과 상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학구 조정이 이뤄졌고, B 보육원 아이들이 전학 와서 2009년 학생 수는 32명이 됐습니다. 이에 따라 폐교 위기를 넘겼고, 교감 선생님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B 보육원 학구 조정은 시청 업무와 관련된 사안이 아니어서 교육지원청, 해당 보육원, 해당 초등학교와 논의한 바가 없습니다.
국감에서 답변하는 정은경 복지부 장관 정 장관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열린 2025년도 종합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사진]
<인터뷰 1차 기사 요약>
[삶] "짜장면 사주겠다며 아저씨가 여고생 성추행하고 치근덕"(2025년 10월 23일 송고)
보육원 여교사가 7살 남자아이를 씻겨 주면서 성추행하는 일이 있었다. 7살이면 혼자서 씻을 수 있는데, 자기 무릎에 앉혀서 씻겼다. 초등학교 시절 여자 선배가 여자 후배에게 딥 키스하는 일도 있었다.
자동차 운전면허학원 강사 아저씨가 보육원의 여고생을 추행하기도 했다. 그는 도로 주행을 마치고 컴컴한 밤에 내 손을 이끌어서 자기 허벅지에 올려놓기도 했다. 그는 짜장면을 사주겠다면서 토요일에 나오라고도 했다.
축구를 가르쳐주는 외부 자원봉사자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기도 했다. 오빠라고 부르지 않으면 화를 내기도 했다. 당시 그런 요구에 나는 역겨움을 느꼈다.
보육원 아이들이 성폭력 피해를 보면 보육원 측이 철저히 대응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인터뷰 2차 기사 요약>
[삶] "난 7살때 식사 속도 느리다고 난타채로 100대 맞았다"(2025년 10월27일 송고)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떤 선생님은 내가 밥 먹는 속도가 느리다고 해서 폭행했다. 방에 끌고 가서 난타 채로 무작정 때렸다. 발바닥 외에 다른 부위도 때렸다. 온몸에 멍이 들 정도였다. 나는 정확히 세지는 않았지만 한번 맞으면 100대는 넘어갔다. (김샛별)
나는 '압정 체벌'을 받는 아이를 직접 본 적이 있다. 어떤 방에 들어가니 초등학생 아이가 무릎 꿇고 있었는데, 그 주변 바닥에는 압정으로 테두리가 만들어져 있었다. 선생님은 아이의 머리 부위의 벽에도 압정을 박아놨다. 일어서지 말라는 뜻이었다. (박한솔)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선생님 대신 주로 언니들이 때렸다. 선생님들은 중학생을 때리면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직접 때리지는 않았다. 주로 언니들에게 시켰다. 어떤 언니는 먼저 무릎을 꿇게 했다. 그리고 머리털을 움켜잡고 휘저은 뒤에 뺨을 때렸다. 주먹과 손으로 얼굴을 때렸다. 발로 허벅지 등을 차기도 했다. (박한솔)
B 보육원의 이런 폭력은 다른 보육원에서도 일어났던 전국적인 현상이다. 현재와 같은 집단수용시설과 인력구조, 시스템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보육원 내 가혹행위가 사라질 수는 없다. 집단수용시설을 운영하는 것 자체가 아동들에게 국가폭력을 저지르는 범죄 행위다.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
<인터뷰 3차 기사 요약>
[삶] "여중생인데, 성관계 경험 추측된다고 보육교사가 말하다니" (2025년 11월3일 송고)
"보육원 측은 내가 실어증, 우울증 등을 겪은 것은 중학교 시절에 성관계하고, 그 남자친구와 헤어진 것도 원인이라고 했다. 그건 허위 주장이었다. 나는 전혀 그런 성 경험을 해본 적이 없는 아이였다.
나는 정신과 병원에서 퇴원하는 그날 즉시 보육원에서 사실상 쫓겨났다. 아빠와 같이 생활하라는 것인데, 아빠는 심한 조현병과 알코올 중독을 갖고 있었다. 집에서 아버지는 조현병 증세로 칼을 휘두르기고 했다.
아빠 집에서 살 수 없었던 나는 다른 시설 4곳의 입소와 퇴소를 반복했다. 우여곡절을 거쳐 한 달간 노숙 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에도 이르렀다. (김샛별).
보육 선생님은 상담 한번 받아보자며 나를 정신과 병원에 데려갔다. 그런데 진정한 상담이 되지 않았다. 나를 폭행한 선생님이 뒤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상한 상담 후에 의사 선생님은 나를 진료실 밖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보육원 선생님과 단둘이 상의해서 약 처방을 내렸다. 약 이름과 약의 부작용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
이런 식이니, 조현병이 없는데도 조현병 약을 먹는 아이도 있었다. 보육 교사들은 말을 잘 들으면 약을 끊어주겠다고 했다. 고아원에서 정신과 약물은 아이들 통제 수단이었다. (박한솔)
전국적으로는 대부분의 보육원 아동이 약물 복용 경험을 갖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보육원 교사들은 부모가 아니라 공무직이다. 어떻게 일을 하든 급여는 똑같다. 그래서 손쉽게 아이들을 통제하려 한다. 과거에 그 수단은 폭력이었는데, 지금은 조심스러워졌다. 그래서 약물을 이용하는 것이다.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
keunyoung@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기자 admin@119sh.info
고아청년들과 함께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 [윤근영 기자 촬영]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 기자= "2009년 3월 초에 우리 보육원 아이들 수십명이 전학 가야 했습니다. 도심의 초등학교에서 시골의 학교로 옮겼습니다. 주변에 논밭이 많은 학교였습니다. 폐교를 막기 위한 것이었는데, 전학에 대한 동의 절차도 없었습니다. 새 학교의 우리 반에는 함께 전학 온 고아 동기 3명 외에 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보육원 선생님이 예뻐했던 아이는 시골의 학교가 아닌 도심의 학교에 다녔습니다. 지금도 우리 보육원 아이들은 17년째 이 시골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이는 비(非)수도권 B 시에 있는 B 보육원 출신 김샛별(24), 박한별(24) 씨 등 여성 청년 고아들이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이다.
인터뷰는 10월 5일부터 시작해서 3차례 진행됐다. 인터뷰에는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도 참여했다.
이들은 인터뷰에서 "일반적으로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을 도심의 좋은 학교에 보내려 한다"면서 "폐교 위기의 시골 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부모는 없다"고 했다.
이들은 "우리가 이런 일을 당한 것은 부모가 없거나 부모가 있어 도 힘이 없기 때문"이라면서 "우리가 보육원에서 성폭력, 구타, 통제용 약물복용, 정서적 학대 등을 당한 것도 고아들은 함부로 대해도 문제 될 게 없다는 보육원 안팎의 인식 때문"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 해당 B시 교육지원청은 "당시 B 보육원의 요청에 따라 학구 조정을 한 것"이라면서 "아이들을 보낸 학교와 받은 학교 모두의 의견을 수 렴했고, 행정 예고 등의 절차를 거쳤다"고 했다.
해당 도 교육청도 "관련 법령에 따라 학구 조정과 전학이 이뤄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이들을 보낸 학교 측은 당시 고아들 집단 전학에 반대했으나 수용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학교 측은 "2008년 10월 교육지원청에 교장 명의의 공문을 보냈다"면서 "교장 선생님은 폐교될 가능성이 있는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면 그다음에 폐교됐을 때 문제가 생긴다면서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고 했다.
고아들을 받은 학교 측도 "폐교 위기에 직면하자 당시 교장 선생님이 아이들 유치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면서 "그 결과, 보육원 아이들이 전학 오면서 폐교를 막을 수 있었고, 교감 선생님도 모실 수 있었다"고 밝혔다.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는 "강제 전학은 학원 폭력 가해자에게 내려지는 8호 처분으로, 수위가 높은 아주 부정적인 조치"라면서 "아무 잘못이 없는 아이들을 고아라는 이유로 전학 보내는 것은 범죄에 해당된다"고 했다.
조 대표는 "우리는 이 사안에 대해 깊게 우려하고 강력히 대응할 예정"이라면서 "과거에 시작된 일이기는 하지만 교육부 장관과 도 교육감이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할 사안"이라고 했다.
"본 시설은 교육부 수용령 재산입니다. 관계자 외의 출입을 일절 금합니다" 폐교된 한 학교의 입구에 내걸린 알림문 [연합뉴스 사진]
<인터뷰 4차 기사 질문-답변>
-- 초등학교 때 집단으로 전학 간 것은 언제인가.
▲ (박한솔) 2009년 3월 초 내가 초등 2학년 개학과 동시에 전학 갔다. 도심에 있는 대형 초등학교에서 시골의 작은 초등학교로 갔다. 주변에 논밭이 많았고 편의시설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 학교로 나만 간 것이 아니었다. 우리 보육원 아이들 전체가 갔다.
-- 당시 전학 간 고아들은 몇 명이었나.
▲ (박한솔) 2학년만 3명이었고, 언니 오빠들은 훨씬 많았다. 1∼6학년 전체로는 20∼30명은 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물론 정확한 수치는 아니다.
▲ (김샛별) 나와 한솔이, 그리고 또 다른 보육원 동기 00가 2학년 같은 반이었다. 새 학교는 한 학년에 1개 반밖에 없었다. 우리는 2학년 1반이었는데, 보육원 동기 3명 말고는 다른 아이가 1명도 없었다.
▲ (박한솔) 2학년 내내 우리 3명뿐이었다. 3학년으로 올라가서는 고아가 아닌 아이들이 좀 들어오기 시작했다.
-- 본인들이 전학 간 이유는 무엇이었나.
▲ (박한솔) 새 학교에 처음 도착했더니 교장 선생님이 우리들을 도서관에 모아놓고 하신 말씀이 정확히 기억난다. "고맙다. 너희들이 안 왔으면 우리 학교는 폐교될 뻔했다"고 했다. 그때 나는 우리가 폐교를 막기 위해 전학 된 것을 알았다.
"고아들은 100% 피해자다" 청와대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충북희망원 사태 피해자 [고아권익연대 제공]
-- 당시 B 보육원 아이들은 전학에 동의했나.
▲ (박한솔) 그런 동의 절차는 없었다. 보육원도, 학교도, 교육지원청도 아이와 부모들을 대상으로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그냥 전학 가라고 해서 전학 왔다.
▲ (김샛별) 나도 왜 전학을 가야 하는지에 대해 사전에 설명 들은 기억이 없다. 보육원 선생님이 뭔가 말했다면 그것도 다 결정해 놓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 보육원, 교육 지원청 등은 왜 동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을까.
▲ (박한솔) 우리는 고아들이니 동의를 구하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 보육원 측은 고아들 부모들에게 동의를 구했나.
▲ (박한솔) 그런 절차는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보육원 측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우리들은 부모가 없거나 있어도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아 산업 이제 끝내야" 2025년 11월10일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한국아동복지협회 행사장 입구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고아 출신 송준영 씨
-- 고아원 아이들은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나.
▲ (김샛별) 나는 그때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전학 가라고 하니 당연히 가야 하는구나 하고 갔다. 초등학교 고학년 오빠와 언니들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을 가능성도 있다.
-- 이런 집단 전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박한솔) 당연히 차별이다. 그 당시에는 너무 어려서 집단적 전학이 사회적 차별인지도 몰랐다. 더욱 황당한 것은 같은 보육원의 어떤 아이는 시골 학교가 아닌 도심의 학교로 갔다. 어떤 선생님이 예뻐했던 아이였다. 2009년 당시 이 아이는 미취학 아동이었는데 그 이후에 입학할 때 도심의 00 초등학교로 갔다. 시골 학교가 좋은 곳이라면 왜 자기가 예뻐하는 아이는 보내지 않는가? 보육원 선생님들은 이런 식으로 고아들을 차별했다.
▲ (조윤환 대표) 나도 고아 출신이다. 내가 살았던 부여의 보육원에 문제가 생기면서 우리는 다른 보육원으로 옮겨야 했다. 그때 전학을 갈지 여부에 대한 동의 절차가 있었다. B 보육원 아이들을 강제로 전학시키면서 부모와 아이들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은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폐교, 아쉬운 작별 그리고 새로운 시작" 졸업식을 끝으로 폐교에 들어가는 한 초등학교 졸업식이 2025년 1월 열렸다. 졸업식을 마친 학생들이 선생님과 함께 교정 곳곳을 핸드폰 사진에 담으며 추억을 남기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
-- 새 학교가 이전 학교와 무엇이 달랐나.
▲ (박한솔) 새 학교는 걸어서 40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어른들에게는 30분 이내의 거리였다. 이전 학교에 비해 물리적 통학 거리는 다소 가까워졌다. 그런데 새 학교는 시골에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주변에는 논밭이 많았고, 편의점도 없었다. 사람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위험한 측면이 있었다. 나중에는 스쿨버스가 생겼다.
-- 위험했다는 게 무슨 이야기인가.
▲ (박한솔) 등하굣길이 문제였다. 차도와 인도가 구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범죄 피해 위험성도 있었다. 한번은 하굣길에 무리 지어 걸어가는 우리 옆에 회색 스타렉스 승합차가 멈춰 섰다. 보육원에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이라면서 태워줄 테니 타라고 했다. 우리는 무서워서 응하지 않았다. 이때 우리가 차를 탔다면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 등하교하면서 이런 위험성이 종종 있었다. 주변에 사람이 없다 보니 이런 위험에 쉽게 노출됐다.
-- 다른 문제점이 있다면.
▲ (김샛별) 친구들과 단절됐다. 우리는 친구들과 친해지자마자 전학 가야 했다. 새 친구를 사귈 수도 없었다. 우리 학년에 우리 고아 3명 말고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 (박한솔) 이전 학교에는 아이들이 많았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1개 반에 30명씩 한 학년에 8개 반 정도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는 이전 학교를 떠날 때 친구들한테 인사도 못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도 문제였다. 중학교에 가면 같은 초등학교 출신끼리 어울리곤 하는데, 우리에겐 그런 친구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학원 친구들도 있긴 했는데, 우리 중에는 학원에 안 다닌 아이도 있었다.
-- 아이가 별로 없으면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집중적으로 가르쳐주니 나은 것 아닌가.
▲ 아이들이 별로 없으면 경쟁을 통한 성장이 어려워진다. 2학년 때 3명밖에 없으니 우리는 항상 전교 1∼3등이었다.
2010년대 시골 학교 운동회 시골의 한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엄마와 아이가 함께 운동회에 참가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
-- 새 학교의 장점은 없었나.
▲ (박한솔) 2학년 담임 선생님은 우리를 때리지 않고 잘 해줘서 너무 좋았다. 보육원에서 우리는 맨날 맞았는데 학교에 와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 그때 그 담임 선생님을 많이 좋아했다.
-- 다른 장점은 없었나.
▲ (박한솔) 이전 학교에서는 우리가 학교 식당에서 점심을 빨리 먹는지 늦게 먹는지 감시하는 보육원 언니가 있었다. 식당이 크다 보니 언니가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우리를 감시했다. 그 언니도 보육원 선생님이 시켜서 한 행위였다. 새 학교는 식당이 작아서 보육원 언니가 우리가 감시할 수 없었다. 새 학교에서는 마음 편하게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조선총독부 건물 [연합뉴스 사진]
-- 조 대표는 B 보육원 아이들 집단 전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조 대표)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이 대한민국 아동들을 함부로 대하는 것과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원치 않는 강제 전학은 학폭(학원 폭력)과 교권 침해 사안 외에는 불법 행위다. 우리 단체는 이 사태에 대해 적극 대응할 예정이다.
-- 이런 전학이 동의 절차 없이 가능한 일인가.
▲(조 대표) 일반 가정에서 미성년자 전학 문제는 부모들이 결정한다. 상식적인 부모들이라면 들고일어났을 것이다. 나는 과거에 일어난 일이지만 교육부 장관과 해당 교육청 교육감이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관련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아동을 물건 취급한 사건이다. 아동의 권리를 지켜주겠다며 아동을 부모로부터 단절시킨 후에 이런 행위를 했다. 이런 대한민국 아동보호 시스템은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인터뷰 4차 기사 질문-답변 끝)
국회 교육위 출석한 최교진 교육부 장관 최 장관이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열린 2025년도 종합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
<해당 도 교육청 입장>
B시 교육지원청을 통해 파악한 바로는 관련 법령에 따라 합법적으로 학구 조정과 전학이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 기관은 B 보육원의 학구 조정 요청에 따라 00초(고아들 받은 학교)와 00초(아이들 받은 학교)의 의견을 수렴하였고, 행정예고 등의 절차를 거친 후 학구 조정을 하였습니다.
B 보육원은 시설보호아동의 맞춤형 학습권 확보 및 대학교 주변 유흥시설 밀집 지역으로부터 학생생활지도 안전성 확보의 사유로 학구 조정을 요청하였고, 이에 관련 절차에 따라 학구 조정이 이뤄졌습니다.
우리 시설은 시설보호아동의 근거리 통학로 확보와 개인별 맞춤형 학습권 보장을 위해 2008년 9월 학구 재조정 아동수용 요구서를 제출했고, 교육청에서는 00초(고아를 전학 보내는 학교)와 00초(고아를 받는 학교)의 학구 조정 관련 학교장 의견수렴, 학구 조정기초자료 검토를 통해 2008년 10월 통학 구역조정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에 2009년 2월에 대상 아동 16명과 초등학교 방문 탐방 및 선생님과의 만남의 시간을 갖고 2009년 3월에 전학하게 됐습니다.
<고아들을 전학 보낸 초등학교 측 설명>
우리 학교는 2008년 10월 6일 본교 교장 선생님 명의로 시 교육지원청에 공문을 보냈습니다. 교육지원청이 의견을 달라고 해서 보낸 것이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고아들 전출을 반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정도의 통학 거리는 아이들이 충분히 걸을 수 있고, 아이들이 전출되면 학급 재조정의 문제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전학 가는 학교는 작은 학교로 폐교될 수 있는 상황인데, 이 아이들을 보낸 뒤 폐교되면 또 문제가 생긴다고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전학에 반대한다고 했지만 수용되지 않았습니다.
<고아들을 받은 학교의 설명>
2009년 3월에 20여명의 B 보육원 아이들이 집단으로 전학해 온 것은 맞습니다. 당시 우리 학교는 학생 수가 많았던 6학년 아이들이 빠져나가고, 저학년 아이들은 거의 안 들어오면서 폐교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당시 교장 선생님은 학교의 책임자로서 폐교를 막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B 교육지원청과 B 보육원과 상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학구 조정이 이뤄졌고, B 보육원 아이들이 전학 와서 2009년 학생 수는 32명이 됐습니다. 이에 따라 폐교 위기를 넘겼고, 교감 선생님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B 보육원 학구 조정은 시청 업무와 관련된 사안이 아니어서 교육지원청, 해당 보육원, 해당 초등학교와 논의한 바가 없습니다.
국감에서 답변하는 정은경 복지부 장관 정 장관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열린 2025년도 종합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사진]
<인터뷰 1차 기사 요약>
[삶] "짜장면 사주겠다며 아저씨가 여고생 성추행하고 치근덕"(2025년 10월 23일 송고)
보육원 여교사가 7살 남자아이를 씻겨 주면서 성추행하는 일이 있었다. 7살이면 혼자서 씻을 수 있는데, 자기 무릎에 앉혀서 씻겼다. 초등학교 시절 여자 선배가 여자 후배에게 딥 키스하는 일도 있었다.
자동차 운전면허학원 강사 아저씨가 보육원의 여고생을 추행하기도 했다. 그는 도로 주행을 마치고 컴컴한 밤에 내 손을 이끌어서 자기 허벅지에 올려놓기도 했다. 그는 짜장면을 사주겠다면서 토요일에 나오라고도 했다.
축구를 가르쳐주는 외부 자원봉사자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기도 했다. 오빠라고 부르지 않으면 화를 내기도 했다. 당시 그런 요구에 나는 역겨움을 느꼈다.
보육원 아이들이 성폭력 피해를 보면 보육원 측이 철저히 대응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인터뷰 2차 기사 요약>
[삶] "난 7살때 식사 속도 느리다고 난타채로 100대 맞았다"(2025년 10월27일 송고)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떤 선생님은 내가 밥 먹는 속도가 느리다고 해서 폭행했다. 방에 끌고 가서 난타 채로 무작정 때렸다. 발바닥 외에 다른 부위도 때렸다. 온몸에 멍이 들 정도였다. 나는 정확히 세지는 않았지만 한번 맞으면 100대는 넘어갔다. (김샛별)
나는 '압정 체벌'을 받는 아이를 직접 본 적이 있다. 어떤 방에 들어가니 초등학생 아이가 무릎 꿇고 있었는데, 그 주변 바닥에는 압정으로 테두리가 만들어져 있었다. 선생님은 아이의 머리 부위의 벽에도 압정을 박아놨다. 일어서지 말라는 뜻이었다. (박한솔)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선생님 대신 주로 언니들이 때렸다. 선생님들은 중학생을 때리면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직접 때리지는 않았다. 주로 언니들에게 시켰다. 어떤 언니는 먼저 무릎을 꿇게 했다. 그리고 머리털을 움켜잡고 휘저은 뒤에 뺨을 때렸다. 주먹과 손으로 얼굴을 때렸다. 발로 허벅지 등을 차기도 했다. (박한솔)
B 보육원의 이런 폭력은 다른 보육원에서도 일어났던 전국적인 현상이다. 현재와 같은 집단수용시설과 인력구조, 시스템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보육원 내 가혹행위가 사라질 수는 없다. 집단수용시설을 운영하는 것 자체가 아동들에게 국가폭력을 저지르는 범죄 행위다.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
<인터뷰 3차 기사 요약>
[삶] "여중생인데, 성관계 경험 추측된다고 보육교사가 말하다니" (2025년 11월3일 송고)
"보육원 측은 내가 실어증, 우울증 등을 겪은 것은 중학교 시절에 성관계하고, 그 남자친구와 헤어진 것도 원인이라고 했다. 그건 허위 주장이었다. 나는 전혀 그런 성 경험을 해본 적이 없는 아이였다.
나는 정신과 병원에서 퇴원하는 그날 즉시 보육원에서 사실상 쫓겨났다. 아빠와 같이 생활하라는 것인데, 아빠는 심한 조현병과 알코올 중독을 갖고 있었다. 집에서 아버지는 조현병 증세로 칼을 휘두르기고 했다.
아빠 집에서 살 수 없었던 나는 다른 시설 4곳의 입소와 퇴소를 반복했다. 우여곡절을 거쳐 한 달간 노숙 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에도 이르렀다. (김샛별).
보육 선생님은 상담 한번 받아보자며 나를 정신과 병원에 데려갔다. 그런데 진정한 상담이 되지 않았다. 나를 폭행한 선생님이 뒤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상한 상담 후에 의사 선생님은 나를 진료실 밖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보육원 선생님과 단둘이 상의해서 약 처방을 내렸다. 약 이름과 약의 부작용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
이런 식이니, 조현병이 없는데도 조현병 약을 먹는 아이도 있었다. 보육 교사들은 말을 잘 들으면 약을 끊어주겠다고 했다. 고아원에서 정신과 약물은 아이들 통제 수단이었다. (박한솔)
전국적으로는 대부분의 보육원 아동이 약물 복용 경험을 갖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보육원 교사들은 부모가 아니라 공무직이다. 어떻게 일을 하든 급여는 똑같다. 그래서 손쉽게 아이들을 통제하려 한다. 과거에 그 수단은 폭력이었는데, 지금은 조심스러워졌다. 그래서 약물을 이용하는 것이다.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
keunyoung@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기자 admin@119sh.info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