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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목 기자]
일본의 동쪽 끝, 마을을 습격한 재앙신을 물리친 소년 '아시타카'는 저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서쪽으로 떠난다. 아득히 먼 지방에 도착한 그는 들개 무리의 습격으로 절벽에서 추락한 소몰이꾼을 구하고, 그가 사는 타타라 마을에 머물게 된다. 아시타카는 주민들에게 들개와 함께 생활하는 '모노노케 히메'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을 품는다.
타타라의 지도자 '에보시 고젠'을 만난 아시타카는 마을에 깊은 인상을 받지만, 태고의 숲을 파괴하는 그녀의 행동에 의문을 품는다. 에보시는 숲의 수호자인 사슴 신을 쓰러뜨리고 산을 인간의 것으로 확보하고자 하지만, 모노 릴짱 노케 히메와 동물 신들은 여기에 저항하며 고대의 영물들과 인간의 대립은 극한으로 치닫는다.
일본 애니메이션 황금시대와 거장의 연보를 완성한 작업
바다이야기무료
▲ <모노노케 히메> 스틸
ⓒ 대원미디어
일본 애니메이션을 대표하는 스튜디오 지브리, 이곳의 얼 골드몽릴게임릴게임 굴은 미야자키 하야오다. 대표작을 들자면 무엇일까? 이것저것 따져 마지막 남는 건 대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모노노케 히메>다. 그중 지브리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연작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부터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 <붉은 돼지>를 아우르며 작가의 비전이 총망라한 작품이 <모노노케 히메>라는 데 이견을 달기 힘들다. 그런 릴짱 작품이 돌아온다. 이미 익숙한 모험담 대신 다른 이야길 해보려 한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로 자신의 이름을 건 장편 애니메이션을 처음 선보인 미야자키 하야오는 작품에 선보인 작가의 세계관을 더욱 확장하려 했다. 영화와 병행한 만화 버전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는 1982년부터 1994년까지 10여 년간 단행본 7권이 쿨사이다릴게임 란 방대한 분량으로 완결된다. 코믹스 결말은 우리가 아는 애니메이션과 퍽 달랐다. 두 개의 '나우시카' 사이 작가의 시선은 어떻게 변한 걸까? 그 질문은 3년 후 풀린다. <모노노케 히메>는 코믹스의 결론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다.
즉, <모노노케 히메>는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로부터 시작된 지브리 황금기 1차 결산인 동시에 미야자키 하야오란 거장의 작품 세계 역시 집대성한 작업인 셈이다. 지브리 작품에서 일관되게 유지되는 소박한 공동체주의와 환경오염에 대한 근심, 전쟁과 독재에 대한 거부감 등이 완결형으로 농축된 상태다. 그래서 사실상 은퇴 작품이라 보는 견해가 적지 않다. 물론 이후로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부터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까지 다수의 작품을 선보였음에도 이 해석은 힘을 잃지 않는다.
근현대 일본 주류 경향과 모든 면에서 대척점
원래 제목으로 감독이 점찍은 건 '아시타카 전기'였다. '어른의 사정' 탓에 현재 명칭이 되긴 했으나, 보고 나면 원래 작명이 본질에 가깝다는 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마치 고대 신화에 등장할 위대한 영웅 일대기라 해도 좋을 내용 때문이다. 아시타카는 위대하고 고결한 위업(괴물 퇴치) 때문에 오히려 저주에 휩싸이고, 이를 풀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 숱한 위기를 극복하며 고통받는 이들을 구하고 그릇된 세상의 질서를 조금이나마 바로잡는다. 아름답고 고결한 반려를 만나 전설로 남는다.
그런데 '모노노케 히메'란 제목도 어색하진 않다. 하야오의 작품에서 확연한 개성인 강인한 여성 주인공 바통을 이어받는 연속성과 함께 자연 친화적 존재감이 명백한 덕분이다. 역시 고대 신화에서 동서양 통틀어 목격되는 공통점, 위대한 영웅과 초자연적 존재의 결합을 연상케 한다. 현대에 창조된 신화인 동시에 근대 이후 정복 대상으로 전락한 자연의 힘과 가치를 복권하는 세계관 구현인 것. 단순한 복고풍이 아닌, 동시대에 대한 반성이자 인류의 미래를 향한 문명 진단의 결실인 셈이다.
▲ <모노노케 히메> 스틸
ⓒ 대원미디어
영웅적 주인공의 출신 역시 범상할 리 없다. 아시타카는 현재 일본 주류 야마토 세력에 밀려난 '에미시(에조)' 출신, 미래 족장으로 성장하던 존재다. 고대부터 일본 역사는 원주민과 도래인 혼혈이 다른 선주민을 몰아내며 이어졌다. 북으론 아이누, 남으론 유구(오키나와)까지 정복은 계속된다. 일본 역사에서 근대화 전까지 지배 체제였던 무사 정권 '막부'의 최고 권력자 '쇼군(장군)' 지위 역시 에미시 세력을 정벌하는 동쪽 변경 군사 지도자에서 유래한 명칭. 에미시 집단은 일본주류에선 아메리카 원주민과 별반 다르지 않은 존재다.
그 에미시 영웅을 주역으로 내세우고, 인간에게 버림받아 들개 신에게 거둬진 '모노노케 히메'를 파트너로 설정한 것부터 현재 일본 주류 세계관과 어긋난다. 게다가 여전히 일본 사회에서 동화 대상으로 취급되는 '아이누' 신화가 아시타카와 '산'(모노케 히메의 원래 이름)의 관계 기원이기도 하다. 민족의 시조가 들개와 결합한 인간 영웅이란 신화는 애니메이션의 기본 줄거리 축으로 고스란히 연결된다. '카무이'란 호칭으로 자신들을 둘러싼 자연의 존재를 존칭하는 아이누 세계관과도 통하는 대목이다.
일본이 감행한 소수민족 배제와 차별, 강제 동화정책에서 말살 대상인 고대 소수민족을 주인공으로 세우고, 현대 일본이 추구한 패권과 물질문명에 대한 대척점으로 자연 친화 지향을 전면에 세운 작업은 고전적 신화 서사에 생태론적 환경 보호 가치를 입힌다. 게다가 한국과 함께 단일민족 유독 강조하는 일본 주류 시각에 정면으로 맞서는 주인공을 내세운 데 이르면, 창작자의 결기를 체감할 수밖에 없다. 기존 지브리 작품에서도 친환경/소수자 옹호는 짙지만, 유독 <모노노케 히메>가 종합판으로 떠오르는 이유다.
선악 단순대비를 넘어 생존 투쟁의 복잡성으로
▲ <모노노케 히메> 스틸
ⓒ 대원미디어
영화의 핵심 정서는 인간에 의한 자연 파괴가 낳는 비극이다. 하지만 단순한 선(자연) vs 악(인간) 구도로 그려지지 않는다. 자연을 상징하는 동물 신조차 각기 입장과 태도는 상이하고, 그에 따른 가치 평가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숲을 베고 불태우는 인간에 대한 반감은 같아도 대처법은 제각각이다. 멧돼지들은 정면으로 대결해 인간을 물리치려 하지만, 성성이들은 폐허에 나무를 심으며 소극적으로 저항할 뿐이다. 들개 모로 일족은 게릴라전을 펼치지만, 인간 전체를 공격 대상으로 삼진 않고, 숲의 수호자 사슴 신은 숲이 파괴되어도 개입하지 않는다. 그런 다양성을 통해 자연이라 해서 단일한 집단군이 아님을 해설한다.
인간 역시 획일화하지 않는다. 에보시를 수령으로 한 타타라 마을이 그 입체감을 상징하는데, 전국 시대 전쟁과 약탈이 일상이던 당대 일본에서 고향을 잃은 유민, 유곽에 팔려온 노예 여성, 심지어 오늘날도 천대받는 나병 환자까지 거둬들여 성 평등 공동체를 이룬 곳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름을 알린 <미래소년 코난> 속 목가적 생태 공동체의 실제 역사적 모델 같은 공간이다. 이들은 제철과 총포 생산으로 자립을 유지하지만, 무사 집단이 호시탐탐 황금알 낳는 거위 같은 타타라를 공격하고, 이에 맞선 항쟁을 거듭하는 고단한 삶을 이어간다.
산속 요새 같은 마을은 식량을 자급하지 못하기에 외부에서 물자를 가져와야 하고, 노동력을 계속 공급받아야 유지될 수 있다. 그들이 교역하려면 산의 광석을 채굴하고 용광로를 가동해야 한다. 즉 생존을 위해 마을 사람들은 끝없이 산을 파괴하고 숲을 베어야만 하는 운명이다.
아시타카도 깊게 감명을 받은 중세 일본의 평균치 한참 초월한 '이상적 복지국가' 타타라 마을은 동시에 어쩔 수 없는 환경파괴를 지속할 수밖에 없는 체제다. 숲을 보존하려면 마을은 붕괴한다.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져 농노나 유랑자로 전락할 테고, 나병 환자들은 생존조차 어렵다. 에보시는 주민들을 지켜야 한다. 타협은 듣기 좋은 몽상에 불과할 테다.
▲ <모노노케 히메> 스틸
ⓒ 대원미디어
아시타카는 이 모순적 상황에 직면한다. 그가 소중히 여기는 자연과의 공존이란 신념은 그가 본 가장 이상적인 인간 공동체의 역설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주인공은 타타라 마을을 노리는 영주의 군대와 맞서는 한편, 사슴 신을 노리는 에보시와도 대립하는 운명이다. 두 대의는 쉽게 화해하거나 공존할 수 없다. 양 집단은 아시타카의 호소를 현실 불가능한 꿈이라 일축한다. 그 역시 뚜렷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다. 그럼 극단적 대치와 한쪽의 굴종 혹은 멸망만이 답인 걸까? 감독은 작중 주인공의 행동을 통해 자신이 통찰한 결론을 제시한다.
'살아라!'라는 울림, 1997년 탄생보다 2026년에 더 깊고 진하다
▲ <모노노케 히메> 스틸
ⓒ 대원미디어
작품의 공개 당시 카피는 "生きろ。"(살아라)다. 얼핏 복잡한 영화 속 배경과 적대하는 세력에 비하면 너무 뻔한 화두로 읽힐 법하다. 그러나 작품을 보고 나면 생각에 잠기며 거장이 평생을 투자해 도달한 지혜에 공감하게 된다. 그런 깊이 있는 성찰이 한 세대가 지난 오늘날에도 애니메이션 역사에 길이 남을 걸작으로 <모노노케 히메>를 손꼽는 원천일 테다.
청소년 시절에 처음 본 작품을 접한 이들이 자녀와 함께 재관람하는 시절이지만, 영화가 선보인 핵심 주제와 가치는 마치 숙성되듯 더욱 빛난다. 극단적 대립과 타자의 배제가 당연한 현실론인 양 득세하는 2026년에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욱 유효하고 절실한 시각을 제공한다. 그만큼 작가가 근심하던 파괴적 방향이 21세기 들어 가속화되고, 사회 구성원의 정신을 길들인 탓이다. 이를 걱정하는 이들에겐 <모노노케 히메>에 담긴 정신은 교재와 같다.
영화 한 편 재미나게 보는 데 뭘 이리 따질 게 많냐고, 그렇지 않아도 살기 팍팍한 세상에 숨 좀 쉬자고 항변할 이들도 제법 등판할 법하다. 하지만 영화가 현실의 반영이고, 예술가는 어떤 식으로건 창작을 통해 세상을 향한 입장과 통찰을 표현하는 존재임을 인정한다면, <모노노케 히메>와 그 영향력 아래 작품(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 시리즈는 실사판에 가깝다) 공통의 화두는 이제 영화 속 주인공들이 감행하는 사투처럼 우리가 치러야 할 현실의 것이다. 반드시 풀어야 하는 숙제를 짊어지게 만드는, 그래서 더 소중해지는 작품.
<작품정보>
모노노케 히메もののけ姫Princess Mononoke1997 일본 애니메이션, 다크 판타지2026.02.18. (재)개봉 133분 전체관람가감독/각본/원작 미야자키 하야오음악 히사이시 조제작 스튜디오 지브리수입 대원미디어배급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일본의 동쪽 끝, 마을을 습격한 재앙신을 물리친 소년 '아시타카'는 저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서쪽으로 떠난다. 아득히 먼 지방에 도착한 그는 들개 무리의 습격으로 절벽에서 추락한 소몰이꾼을 구하고, 그가 사는 타타라 마을에 머물게 된다. 아시타카는 주민들에게 들개와 함께 생활하는 '모노노케 히메' 이야기를 듣고 호기심을 품는다.
타타라의 지도자 '에보시 고젠'을 만난 아시타카는 마을에 깊은 인상을 받지만, 태고의 숲을 파괴하는 그녀의 행동에 의문을 품는다. 에보시는 숲의 수호자인 사슴 신을 쓰러뜨리고 산을 인간의 것으로 확보하고자 하지만, 모노 릴짱 노케 히메와 동물 신들은 여기에 저항하며 고대의 영물들과 인간의 대립은 극한으로 치닫는다.
일본 애니메이션 황금시대와 거장의 연보를 완성한 작업
바다이야기무료
▲ <모노노케 히메> 스틸
ⓒ 대원미디어
일본 애니메이션을 대표하는 스튜디오 지브리, 이곳의 얼 골드몽릴게임릴게임 굴은 미야자키 하야오다. 대표작을 들자면 무엇일까? 이것저것 따져 마지막 남는 건 대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모노노케 히메>다. 그중 지브리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연작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부터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 <붉은 돼지>를 아우르며 작가의 비전이 총망라한 작품이 <모노노케 히메>라는 데 이견을 달기 힘들다. 그런 릴짱 작품이 돌아온다. 이미 익숙한 모험담 대신 다른 이야길 해보려 한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로 자신의 이름을 건 장편 애니메이션을 처음 선보인 미야자키 하야오는 작품에 선보인 작가의 세계관을 더욱 확장하려 했다. 영화와 병행한 만화 버전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는 1982년부터 1994년까지 10여 년간 단행본 7권이 쿨사이다릴게임 란 방대한 분량으로 완결된다. 코믹스 결말은 우리가 아는 애니메이션과 퍽 달랐다. 두 개의 '나우시카' 사이 작가의 시선은 어떻게 변한 걸까? 그 질문은 3년 후 풀린다. <모노노케 히메>는 코믹스의 결론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다.
즉, <모노노케 히메>는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로부터 시작된 지브리 황금기 1차 결산인 동시에 미야자키 하야오란 거장의 작품 세계 역시 집대성한 작업인 셈이다. 지브리 작품에서 일관되게 유지되는 소박한 공동체주의와 환경오염에 대한 근심, 전쟁과 독재에 대한 거부감 등이 완결형으로 농축된 상태다. 그래서 사실상 은퇴 작품이라 보는 견해가 적지 않다. 물론 이후로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부터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까지 다수의 작품을 선보였음에도 이 해석은 힘을 잃지 않는다.
근현대 일본 주류 경향과 모든 면에서 대척점
원래 제목으로 감독이 점찍은 건 '아시타카 전기'였다. '어른의 사정' 탓에 현재 명칭이 되긴 했으나, 보고 나면 원래 작명이 본질에 가깝다는 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마치 고대 신화에 등장할 위대한 영웅 일대기라 해도 좋을 내용 때문이다. 아시타카는 위대하고 고결한 위업(괴물 퇴치) 때문에 오히려 저주에 휩싸이고, 이를 풀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 숱한 위기를 극복하며 고통받는 이들을 구하고 그릇된 세상의 질서를 조금이나마 바로잡는다. 아름답고 고결한 반려를 만나 전설로 남는다.
그런데 '모노노케 히메'란 제목도 어색하진 않다. 하야오의 작품에서 확연한 개성인 강인한 여성 주인공 바통을 이어받는 연속성과 함께 자연 친화적 존재감이 명백한 덕분이다. 역시 고대 신화에서 동서양 통틀어 목격되는 공통점, 위대한 영웅과 초자연적 존재의 결합을 연상케 한다. 현대에 창조된 신화인 동시에 근대 이후 정복 대상으로 전락한 자연의 힘과 가치를 복권하는 세계관 구현인 것. 단순한 복고풍이 아닌, 동시대에 대한 반성이자 인류의 미래를 향한 문명 진단의 결실인 셈이다.
▲ <모노노케 히메> 스틸
ⓒ 대원미디어
영웅적 주인공의 출신 역시 범상할 리 없다. 아시타카는 현재 일본 주류 야마토 세력에 밀려난 '에미시(에조)' 출신, 미래 족장으로 성장하던 존재다. 고대부터 일본 역사는 원주민과 도래인 혼혈이 다른 선주민을 몰아내며 이어졌다. 북으론 아이누, 남으론 유구(오키나와)까지 정복은 계속된다. 일본 역사에서 근대화 전까지 지배 체제였던 무사 정권 '막부'의 최고 권력자 '쇼군(장군)' 지위 역시 에미시 세력을 정벌하는 동쪽 변경 군사 지도자에서 유래한 명칭. 에미시 집단은 일본주류에선 아메리카 원주민과 별반 다르지 않은 존재다.
그 에미시 영웅을 주역으로 내세우고, 인간에게 버림받아 들개 신에게 거둬진 '모노노케 히메'를 파트너로 설정한 것부터 현재 일본 주류 세계관과 어긋난다. 게다가 여전히 일본 사회에서 동화 대상으로 취급되는 '아이누' 신화가 아시타카와 '산'(모노케 히메의 원래 이름)의 관계 기원이기도 하다. 민족의 시조가 들개와 결합한 인간 영웅이란 신화는 애니메이션의 기본 줄거리 축으로 고스란히 연결된다. '카무이'란 호칭으로 자신들을 둘러싼 자연의 존재를 존칭하는 아이누 세계관과도 통하는 대목이다.
일본이 감행한 소수민족 배제와 차별, 강제 동화정책에서 말살 대상인 고대 소수민족을 주인공으로 세우고, 현대 일본이 추구한 패권과 물질문명에 대한 대척점으로 자연 친화 지향을 전면에 세운 작업은 고전적 신화 서사에 생태론적 환경 보호 가치를 입힌다. 게다가 한국과 함께 단일민족 유독 강조하는 일본 주류 시각에 정면으로 맞서는 주인공을 내세운 데 이르면, 창작자의 결기를 체감할 수밖에 없다. 기존 지브리 작품에서도 친환경/소수자 옹호는 짙지만, 유독 <모노노케 히메>가 종합판으로 떠오르는 이유다.
선악 단순대비를 넘어 생존 투쟁의 복잡성으로
▲ <모노노케 히메> 스틸
ⓒ 대원미디어
영화의 핵심 정서는 인간에 의한 자연 파괴가 낳는 비극이다. 하지만 단순한 선(자연) vs 악(인간) 구도로 그려지지 않는다. 자연을 상징하는 동물 신조차 각기 입장과 태도는 상이하고, 그에 따른 가치 평가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숲을 베고 불태우는 인간에 대한 반감은 같아도 대처법은 제각각이다. 멧돼지들은 정면으로 대결해 인간을 물리치려 하지만, 성성이들은 폐허에 나무를 심으며 소극적으로 저항할 뿐이다. 들개 모로 일족은 게릴라전을 펼치지만, 인간 전체를 공격 대상으로 삼진 않고, 숲의 수호자 사슴 신은 숲이 파괴되어도 개입하지 않는다. 그런 다양성을 통해 자연이라 해서 단일한 집단군이 아님을 해설한다.
인간 역시 획일화하지 않는다. 에보시를 수령으로 한 타타라 마을이 그 입체감을 상징하는데, 전국 시대 전쟁과 약탈이 일상이던 당대 일본에서 고향을 잃은 유민, 유곽에 팔려온 노예 여성, 심지어 오늘날도 천대받는 나병 환자까지 거둬들여 성 평등 공동체를 이룬 곳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름을 알린 <미래소년 코난> 속 목가적 생태 공동체의 실제 역사적 모델 같은 공간이다. 이들은 제철과 총포 생산으로 자립을 유지하지만, 무사 집단이 호시탐탐 황금알 낳는 거위 같은 타타라를 공격하고, 이에 맞선 항쟁을 거듭하는 고단한 삶을 이어간다.
산속 요새 같은 마을은 식량을 자급하지 못하기에 외부에서 물자를 가져와야 하고, 노동력을 계속 공급받아야 유지될 수 있다. 그들이 교역하려면 산의 광석을 채굴하고 용광로를 가동해야 한다. 즉 생존을 위해 마을 사람들은 끝없이 산을 파괴하고 숲을 베어야만 하는 운명이다.
아시타카도 깊게 감명을 받은 중세 일본의 평균치 한참 초월한 '이상적 복지국가' 타타라 마을은 동시에 어쩔 수 없는 환경파괴를 지속할 수밖에 없는 체제다. 숲을 보존하려면 마을은 붕괴한다.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져 농노나 유랑자로 전락할 테고, 나병 환자들은 생존조차 어렵다. 에보시는 주민들을 지켜야 한다. 타협은 듣기 좋은 몽상에 불과할 테다.
▲ <모노노케 히메> 스틸
ⓒ 대원미디어
아시타카는 이 모순적 상황에 직면한다. 그가 소중히 여기는 자연과의 공존이란 신념은 그가 본 가장 이상적인 인간 공동체의 역설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주인공은 타타라 마을을 노리는 영주의 군대와 맞서는 한편, 사슴 신을 노리는 에보시와도 대립하는 운명이다. 두 대의는 쉽게 화해하거나 공존할 수 없다. 양 집단은 아시타카의 호소를 현실 불가능한 꿈이라 일축한다. 그 역시 뚜렷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다. 그럼 극단적 대치와 한쪽의 굴종 혹은 멸망만이 답인 걸까? 감독은 작중 주인공의 행동을 통해 자신이 통찰한 결론을 제시한다.
'살아라!'라는 울림, 1997년 탄생보다 2026년에 더 깊고 진하다
▲ <모노노케 히메> 스틸
ⓒ 대원미디어
작품의 공개 당시 카피는 "生きろ。"(살아라)다. 얼핏 복잡한 영화 속 배경과 적대하는 세력에 비하면 너무 뻔한 화두로 읽힐 법하다. 그러나 작품을 보고 나면 생각에 잠기며 거장이 평생을 투자해 도달한 지혜에 공감하게 된다. 그런 깊이 있는 성찰이 한 세대가 지난 오늘날에도 애니메이션 역사에 길이 남을 걸작으로 <모노노케 히메>를 손꼽는 원천일 테다.
청소년 시절에 처음 본 작품을 접한 이들이 자녀와 함께 재관람하는 시절이지만, 영화가 선보인 핵심 주제와 가치는 마치 숙성되듯 더욱 빛난다. 극단적 대립과 타자의 배제가 당연한 현실론인 양 득세하는 2026년에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욱 유효하고 절실한 시각을 제공한다. 그만큼 작가가 근심하던 파괴적 방향이 21세기 들어 가속화되고, 사회 구성원의 정신을 길들인 탓이다. 이를 걱정하는 이들에겐 <모노노케 히메>에 담긴 정신은 교재와 같다.
영화 한 편 재미나게 보는 데 뭘 이리 따질 게 많냐고, 그렇지 않아도 살기 팍팍한 세상에 숨 좀 쉬자고 항변할 이들도 제법 등판할 법하다. 하지만 영화가 현실의 반영이고, 예술가는 어떤 식으로건 창작을 통해 세상을 향한 입장과 통찰을 표현하는 존재임을 인정한다면, <모노노케 히메>와 그 영향력 아래 작품(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 시리즈는 실사판에 가깝다) 공통의 화두는 이제 영화 속 주인공들이 감행하는 사투처럼 우리가 치러야 할 현실의 것이다. 반드시 풀어야 하는 숙제를 짊어지게 만드는, 그래서 더 소중해지는 작품.
<작품정보>
모노노케 히메もののけ姫Princess Mononoke1997 일본 애니메이션, 다크 판타지2026.02.18. (재)개봉 133분 전체관람가감독/각본/원작 미야자키 하야오음악 히사이시 조제작 스튜디오 지브리수입 대원미디어배급 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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