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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타투 스튜디오 ‘잉크트월’은 타투이스트 황도(황수경)씨의 일터다. 무대처럼 널찍한 바닥에 날렵한 조명이 딸린 검정 베드 여섯 개와 전신 거울이 군데군데 놓여 있다. 공간의 신비로운 무드는 통창이 담아내는, 종일 변하는 하늘로 완성되는데 특히 해 질 녘이 아름다운 ‘노을 맛집’이다. 여기서 어느덧 사계절을 보냈다. 홍대 앞에서 개인 숍을 운영하며 “갈라파고스”처럼 고립돼 지내던 그가 이곳 동료의 작업실로 옮긴 게 1년 전, 그즈음 타투유니온 사무장도 맡았다. 타투이스트 경력 10년 만에 스스로 만든 큰 변화였다.
“직업 뭐 손오공게임 냐고 물어봐서 타투한다고 하면 다 놀라요. 머리도 볶은 게 최대한 강하게 문신하는 사람처럼 보이려고요(웃음).”
10년 차 타투이스트 황도씨는 타투유니온 사무장을 맡아 올해 9월 문신사법 통과에 힘을 보탰다. ⓒ시사IN 신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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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도 올블랙만 입는다는 그는 순한 인상에 목소리가 가만가만하다. 애당초 타투에 대한 인식도 부정적이었다. 대학 때 목덜미에 눈꽃 문신을 한 친구를 보고 ‘그거 안 지워지는데 괜찮냐’ ‘부모님한테 안 혼나냐’고 물었는데, 친구는 무심하게 말했다. “예쁘지 않아? 내가 좋아서 했어.” 그 말을 듣고 속으로 바다이야기고래 자책했다. ‘또 시골 애 티 냈구나···.’
나고 자란 곳은 경기도 이천이다. 수능을 친 날까지도 통금이 오후 6시였을 정도로 부모가 엄했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불문과에 진학한 건 교사나 공무원이 시집을 잘 간다는 어머니의 압박 때문이다. 어쨌거나 홍대 앞에서 자취를 시작하는 바람에 ‘꽉 야마토게임무료다운받기 막힌 애’는 알을 깨는 나날을 보내게 되었고, 망한 연애 후 ‘안전 이별’을 위해 국경 넘어 떠난 여행은 그 정점이었다.
“인도에서 온몸에 문신이 있는 사람을 만났는데 겪어보면 그냥 사람인 거예요. 거칠고 우악스러운 게 아니라 말이 잘 통하고 배울 점도 많고, 생각보다 여리고 아기자기한 걸 좋아하 모바일바다이야기하는법 고요. 여행지에서 위험한 일이 벌어져서 나가보니까 거기서 깽판을 치는 사람은 문신이 없고, 문신한 양아치 같은 사람이 정의의 사도야. 이게 무슨 상황이지? 문신 없는 사람이 더 위험할 수도 있구나(웃음). 문신이 있다는 이유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걸 천천히 오래오래 체득했죠.”
몸에 관대할 수 있는 포인트
인도에서 보낸 6개월은 타투만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선입견도 깨주었다. 나는 교사와 맞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러면 장차 무엇을 해야 할까. 궁리 끝에 블로그를 검색해 타투이스트 노야(김병수)를 찾아갔다. 인도에서 해나(인도·중동 지역에서 많이 쓰이는 전통 염색)를 했을 때 타투도 잘할 거 같으니 한번 배워보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 말을 붙들어보기로 했다. 몸에 타투 하나 없이 타투이스트가 되겠다며 찾아온 어지간히 소심한 그에게 ‘사부’는 첫 타투를 선물했다. 손목에 새긴 ‘새벽 4시’. 청춘을 적신 장마 같은 단어다. 20대 초반에 밤마다 음주 산책을 하며 새벽까지 깨어 있었고 식이장애로 인해 막 먹거나 못 먹어서 체중이 10㎏ 넘게 빠졌다. 주변의 대우가 180도 달라졌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예뻐졌다는 말을 듣게 되자 “모자랐던 인정 욕구가 채워지고 쾌감이 들었다”. 말라야 한다는 강박에 거식증과 폭식증을 2년 넘게 반복하던 중 홍대입구역 인근 동교동삼거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허물어진 몸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문신을 만났고 “문신을 몸에 가진 사람이 몸을 대하는 태도”에 차츰 물들었다. 몸과 화해하는 계기로 문신이라는 세계에 눈뜬 것이다.
황도는 파인라인 타투이스트다. 아주 가는 선으로 이루어진 섬세하고 정교한 스타일의 타투를 한다. 용도 그리고 꽃도 그리는데 특정한 화풍을 추구한다기보다 바늘의 압력과 잉크가 스미는 과정, 그리는 행위 그 자체를 좋아한다. 타투 하나를 완성하는 데 보통 4~5시간이 소요된다.
“손님의 이야기를 듣고 거기에 따라 도안의 위치를 맞추고 문신을 할 때 굉장히 도파민이 돌아요. 내향인이라서 사람 만나는 게 어려운데 문신할 때는 집중이 잘되고 말도 잘해요. 내가 정말 이걸 좋아하는구나. 남의 몸에 낙서하는 거 너무 신나요.”
주 고객층은 30~40대 여성이다. 작업자마다 자기를 닮은 고객이 온다는 ‘끼리끼리 원칙’이 타투 업계에도 적용된다. 그의 경우엔 타투 안 하게 생긴 사람, 진한 사연이 있는 사람이 온다. 한번은 친구와 둘이서 새와 새장을 그리고 간 손님에게서 몇 년 만에 연락이 왔다.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고, 친구를 기억하기 위해 별을 그려넣고 싶다고 했다. 손님도 울고 그도 울었다. 이처럼 타투하러 온 이들은 인생의 중요한 기점이나 좋아하는 것들을 새기기 위해 매번 소박한 자서전을 쓰고 그는 기꺼이 독자가 된다. 어릴 때부터 두루두루 읽은 책들이 도움이 됐는데, 손님과 무슨 얘기를 해도 얼추 공감대가 생기고 라포르가 잘 형성되는 편이다.
“어느 날 상담 톡이 왔어요. ‘황도님, 제가 80~90㎏ 정도의 몸인데 저도 타투를 받아도 되나요?’ 메시지를 받고 눈물이 났죠. 그분이 몸에 대한 자존감이 낮다며 사진 찍는 걸 걱정하시는 거예요. 그때 한창 인스타그램에 타투한 예쁜 몸 사진을 올리는 게 유행이었거든요. 그래서 문신 위주로 찍으면 되고 그림이 중요하다고 이걸 계기로 달라졌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죠. 문신이 있으니까 내 몸도 괜찮아! 나도 문신할 수 있어! 문신은 본인 몸에 대해 관대할 수 있는 포인트를 갖는 거예요.”
황도씨가 태블릿 PC로 타투 도안을 그리고 있다. 그는 아주 가는 선으로 이루어진 섬세하고 정교한 스타일의 타투를 하는 ‘파인라인 타투이스트’다. ⓒ시사IN 신선영
미국의 페미니스트 록산 게이의 말대로 문신은 내 몸에 내 힘을 행사하고 내 몸의 주인이 되어보는 체험에 가깝다. 그는 실제로 손님들의 변화를 목격한다. “안 하던 걸 해본 사람”이 보여주는 열정의 속도는 무서울 정도다. 처음 하는 게 힘들지 벽을 한번 넘으면 몸의 빈자리만 보인다고 하니 그에게는 돈 벌 기회이기도 하지만 만류한다. “본인 취향이 바뀌어서 나중에 큰 그림을 하고 싶을 때 예쁘게 들어갈 자리가 없을 수 있거든요. 도화지는 한정적입니다.”
타투는 신나는 낙서이면서 외로운 투쟁이었다. 그는 타투이스트 데뷔 3년이 지나서야 부모님께 정식으로 털어놓았다.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고객들의 피드백을 꾸준히 들으면서 “그래, 엄마 걱정처럼 내 일이 너무 안 좋은 일은 아니구나” 하는 믿음이 쌓였다. 일단 200만원이 든 두둑한 현금 봉투를 만들어서 뇌물처럼 바치며 선언했다. “저, 문신합니다.” 부모님은 ‘왜 시집은 안 가고 그런 길을 가냐, 공무원 시험을 다시 준비하라’고 여전히 성화지만 그래도 한 걸음 물러섰다. “엄마가 그러세요. 네 몸에만 하지 마라(웃음). 전 이미 했는데···. 어머니가 친구분들한테 ‘내 딸 문신해’라고 말하기가 창피했나 봐요.”
전 세계적으로 타투는 합법적 예술 행위로 인정받고 있다. K타투의 위상도 최고 수준이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현행법상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이 불법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다 드디어 9월25일 국회에서 문신사법이 통과되었다. 현장에서 역사적인 가결을 지켜보던 그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소감을 밝혔다. “이제 제 직업도 법 테두리 안에 들어올 수 있다는 안도감, 잘못을 바로잡기까지 33년이 걸렸지만 그래도 결국 해냈다는 성취감으로 가슴이 벅찼어요. 이게 정말 되는구나.”
타투 노동자들이 조직된 힘으로 5년간 싸워서 이룬 성과다. 세계적인 타투이스트 도이(김도윤)가 동료들과 나서서 화학섬유노동조합 산하 타투유니온 지회를 결성했고 황도는 이듬해에 가입했다. “조합원이 되면 법제화가 빨리 되려나” 하는 기대가 있었다. 불법이다 보니 변심한 고객들의 신고와 협박에 시달리는 동료들이 많았고 자살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럴 때 도움을 청할 길은 노조뿐이었기에 절실했다. 보호막이 하나씩 생겼다. 고객에게 받는 ‘작업 동의서’ 표준 양식도 노조가 만들었다. 또한 전태일 정신에 입각해 타투 노동자들의 편에서 ‘감염관리지침’을 만들어준 녹색병원과 협력해 ‘사단법인 그린타투센터’를 세우고 문신사 위생교육을 시행하는 등 위험한 불법 시술이라는 낙인을 지우기 위해 노력했다. 현재 조합원은 700명 정도로 20대가 대부분인 MZ 노조다. 사무장이 된 지 1년, 그의 일상에도 잔잔한 활기가 돌았다.
“힘내서 노조 하세요”
“이야기 나눌 동지가 생긴 게 가장 좋아요. 제가 소심해서 아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10년 동안 들었던 말이, ‘황도는 주변을 너무 멸균실처럼 만들려는 경향이 있다’는 거였죠. 그런데 노조 일을 하고 다양한 타투이스트들을 보면서 제가 많이 바뀌었어요. 이 사람이 어떤 성향이고 어떤 말을 해도 일단은 들어주고, 판단하지 않고 최대한 호의적으로 사람을 대하고 이해해보려고 노력해요. 민주노총 수도권지부 분들에게 시위하는 법, 회의 진행하는 법도 배우고요(웃음). 정말로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으니까 급격하게 사회성이 길러져요.”
황도씨가 나고 자란 경기 이천시 장호원은 복숭아가 흔한 동네였다. 농장에서 파지를 사서 만든 병조림으로 겨울을 났다. ⓒ시사IN 신선영
체중도 늘었다. “집회 나갔다가 밥 먹으러 가고, 회의 마치고 밥 먹고” 하다 보니 7㎏ 정도 증량이 됐다며 웃는다. 타투이스트의 직업병은 노안이다. 작업할 때 켜는 조명이 세고 초집중을 한 상태로 눈을 쓰다 보니 노안이 빨리 오는 편이라고. 그 역시 “35세를 기점으로 급행열차”를 타고 체력이 떨어지면서 바로 노안이 왔다. 손목터널증후군과 디스크도 고질병이다. 한 번 작업하고 나서 자리에 누우면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코어가 무너져서 폴댄스를 배웠고 그때 다진 코어 근육으로 생존하고 있다. 노동이 가능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요즘엔 킥복싱을 한다.
그를 키운 과일은 복숭아다. 유명한 복숭아 생산지 경기 이천시 장호원이 고향이다 보니 어릴 때부터 흔하게 먹었고 ‘앨버트’라는 신품종을 맛보고는 제대로 반했다. “물도 많고 누르면 멍들 정도로 너무 부드럽고 맛있는 거예요.” 한 개에 5000원에서 1만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과일을 매 끼니 밥처럼 먹어대자 엄마가 과수원에서 파지를 사서 병조림을 만들어주었다. 엄마 옆에서 같이 복숭아 껍질을 살살 벗기고 조심스레 잘라서 델몬트 주스병에 넣은 천연 황도를 쟁여두고 겨울 내내 원없이 먹었다. 복숭아의 효험은 대단했다. 과거의 황도가 현재의 황도를 달랜다.
“코로나 기간에 한 번 심적으로 꺾였던 적이 있어요. 공황장애도 오고 너무 힘들었는데 노조 하고 숍을 옮기면서 마음이 많이 치유됐어요. 계엄 이후 시위를 나가면서도 좋아졌고요. 이번 여름에는 모처럼 일주일 간격으로 작은 박스를 하나씩 여러 품종의 복숭아를 다채롭게 ‘물복(물렁한 복숭아)’ ‘딱복(딱딱한 복숭아)’ 가리지 않고 먹었어요. 복숭아는 다 옳아요. 제철 과일을 오랜만에 먹으니까 아, 사람 사는 게 진짜 별거 아니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힘들었을까 싶었죠. 그때 트위터 친구분이 말씀해주셨죠. ‘제철 과일 사먹는 건 많이 나아졌다는 거래요. 힘내서 노조 하세요’.”
황도씨가 자신의 몸에 새긴 타투를 보여주고 있다. 복숭아 타투가 가장 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그가 옷자락을 들춰 복숭아 타투를 자랑한다. 주변으로 호랑이, 도마뱀, 꽃들이 옹기종기 모여사는데 각각은 “그때그때의 한 시절을 기록하는 나이테 같은 친구들”이다. 자랑스러운 훈장이기도 하다. 신체발부 수지부모(사람의 신체와 머리털과 피부는 모두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훼손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를 주장하는 부모의 벽을 넘어, 33년 불법의 벽을 넘어, 터부시하는 시선의 벽을 넘어 자기다움을 잃지 않고 쓰러지지도 않고 살아온 흔적이 타투로 남았다. 이 좋은 타투를 황도는 모두에게 권한다. “기억을 몸에 새기는 신기한 경험”이라는 본령 외에도, 인간관계의 리트머스이자 소수자 연대의 가능성은 타투가 주는 뜻밖의 선물이다.
“타투는 사람들이 잘 선택하지 않는 취미잖아요. 하고 나면 굉장히 여러 반응이 있어요. 칭찬도 해주고 오지랖도 부리고 별로라고도 하고. 사회적으로 호불호가 있다 보니까 듣는 말들이 상처가 되죠. 그래서 다른 약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과 공감대가 형성돼요. 일생에 단 한 번도 소수성을 가진 적 없는 사람이 문신을 했다는 이유로 ‘문신한 xx’ ‘문신한 여자는 걸러’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듣죠. 그건 타인의 외모에 대한 혐오거든요. 사람을 겪어보지도 않고 판단하는 거고요. 네가 날 걸러? 내가 걸러!(웃음) 타투는 마이너로서의 삶을 선택해보는 일입니다.”
[캠페인] 전태일의료센터, 여러분의 이름으로 채워주세요
아픈 몸 너머 사회를 치료하는 이 병원의 이름은 ‘전태일’입니다. 노동자의 건강 문제를 들여다보면 구조적인 안전문제가 꼭 숨겨져 있습니다. 일하는 사람이 어떻게 하면 덜 아프고 덜 다칠 수 있을지를 연구하고 사회와 함께 행동하는 병원을 만듭니다. 전태일의료센터는 2027년 건립을 목표로 시민들의 건립기금 참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참여 문의: taeilhospital.org).
은유 (작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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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차 타투이스트 황도씨는 타투유니온 사무장을 맡아 올해 9월 문신사법 통과에 힘을 보탰다. ⓒ시사IN 신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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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 자란 곳은 경기도 이천이다. 수능을 친 날까지도 통금이 오후 6시였을 정도로 부모가 엄했다.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불문과에 진학한 건 교사나 공무원이 시집을 잘 간다는 어머니의 압박 때문이다. 어쨌거나 홍대 앞에서 자취를 시작하는 바람에 ‘꽉 야마토게임무료다운받기 막힌 애’는 알을 깨는 나날을 보내게 되었고, 망한 연애 후 ‘안전 이별’을 위해 국경 넘어 떠난 여행은 그 정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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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도는 파인라인 타투이스트다. 아주 가는 선으로 이루어진 섬세하고 정교한 스타일의 타투를 한다. 용도 그리고 꽃도 그리는데 특정한 화풍을 추구한다기보다 바늘의 압력과 잉크가 스미는 과정, 그리는 행위 그 자체를 좋아한다. 타투 하나를 완성하는 데 보통 4~5시간이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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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타투는 합법적 예술 행위로 인정받고 있다. K타투의 위상도 최고 수준이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현행법상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이 불법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다 드디어 9월25일 국회에서 문신사법이 통과되었다. 현장에서 역사적인 가결을 지켜보던 그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소감을 밝혔다. “이제 제 직업도 법 테두리 안에 들어올 수 있다는 안도감, 잘못을 바로잡기까지 33년이 걸렸지만 그래도 결국 해냈다는 성취감으로 가슴이 벅찼어요. 이게 정말 되는구나.”
타투 노동자들이 조직된 힘으로 5년간 싸워서 이룬 성과다. 세계적인 타투이스트 도이(김도윤)가 동료들과 나서서 화학섬유노동조합 산하 타투유니온 지회를 결성했고 황도는 이듬해에 가입했다. “조합원이 되면 법제화가 빨리 되려나” 하는 기대가 있었다. 불법이다 보니 변심한 고객들의 신고와 협박에 시달리는 동료들이 많았고 자살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럴 때 도움을 청할 길은 노조뿐이었기에 절실했다. 보호막이 하나씩 생겼다. 고객에게 받는 ‘작업 동의서’ 표준 양식도 노조가 만들었다. 또한 전태일 정신에 입각해 타투 노동자들의 편에서 ‘감염관리지침’을 만들어준 녹색병원과 협력해 ‘사단법인 그린타투센터’를 세우고 문신사 위생교육을 시행하는 등 위험한 불법 시술이라는 낙인을 지우기 위해 노력했다. 현재 조합원은 700명 정도로 20대가 대부분인 MZ 노조다. 사무장이 된 지 1년, 그의 일상에도 잔잔한 활기가 돌았다.
“힘내서 노조 하세요”
“이야기 나눌 동지가 생긴 게 가장 좋아요. 제가 소심해서 아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10년 동안 들었던 말이, ‘황도는 주변을 너무 멸균실처럼 만들려는 경향이 있다’는 거였죠. 그런데 노조 일을 하고 다양한 타투이스트들을 보면서 제가 많이 바뀌었어요. 이 사람이 어떤 성향이고 어떤 말을 해도 일단은 들어주고, 판단하지 않고 최대한 호의적으로 사람을 대하고 이해해보려고 노력해요. 민주노총 수도권지부 분들에게 시위하는 법, 회의 진행하는 법도 배우고요(웃음). 정말로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으니까 급격하게 사회성이 길러져요.”
황도씨가 나고 자란 경기 이천시 장호원은 복숭아가 흔한 동네였다. 농장에서 파지를 사서 만든 병조림으로 겨울을 났다. ⓒ시사IN 신선영
체중도 늘었다. “집회 나갔다가 밥 먹으러 가고, 회의 마치고 밥 먹고” 하다 보니 7㎏ 정도 증량이 됐다며 웃는다. 타투이스트의 직업병은 노안이다. 작업할 때 켜는 조명이 세고 초집중을 한 상태로 눈을 쓰다 보니 노안이 빨리 오는 편이라고. 그 역시 “35세를 기점으로 급행열차”를 타고 체력이 떨어지면서 바로 노안이 왔다. 손목터널증후군과 디스크도 고질병이다. 한 번 작업하고 나서 자리에 누우면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코어가 무너져서 폴댄스를 배웠고 그때 다진 코어 근육으로 생존하고 있다. 노동이 가능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 요즘엔 킥복싱을 한다.
그를 키운 과일은 복숭아다. 유명한 복숭아 생산지 경기 이천시 장호원이 고향이다 보니 어릴 때부터 흔하게 먹었고 ‘앨버트’라는 신품종을 맛보고는 제대로 반했다. “물도 많고 누르면 멍들 정도로 너무 부드럽고 맛있는 거예요.” 한 개에 5000원에서 1만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과일을 매 끼니 밥처럼 먹어대자 엄마가 과수원에서 파지를 사서 병조림을 만들어주었다. 엄마 옆에서 같이 복숭아 껍질을 살살 벗기고 조심스레 잘라서 델몬트 주스병에 넣은 천연 황도를 쟁여두고 겨울 내내 원없이 먹었다. 복숭아의 효험은 대단했다. 과거의 황도가 현재의 황도를 달랜다.
“코로나 기간에 한 번 심적으로 꺾였던 적이 있어요. 공황장애도 오고 너무 힘들었는데 노조 하고 숍을 옮기면서 마음이 많이 치유됐어요. 계엄 이후 시위를 나가면서도 좋아졌고요. 이번 여름에는 모처럼 일주일 간격으로 작은 박스를 하나씩 여러 품종의 복숭아를 다채롭게 ‘물복(물렁한 복숭아)’ ‘딱복(딱딱한 복숭아)’ 가리지 않고 먹었어요. 복숭아는 다 옳아요. 제철 과일을 오랜만에 먹으니까 아, 사람 사는 게 진짜 별거 아니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힘들었을까 싶었죠. 그때 트위터 친구분이 말씀해주셨죠. ‘제철 과일 사먹는 건 많이 나아졌다는 거래요. 힘내서 노조 하세요’.”
황도씨가 자신의 몸에 새긴 타투를 보여주고 있다. 복숭아 타투가 가장 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그가 옷자락을 들춰 복숭아 타투를 자랑한다. 주변으로 호랑이, 도마뱀, 꽃들이 옹기종기 모여사는데 각각은 “그때그때의 한 시절을 기록하는 나이테 같은 친구들”이다. 자랑스러운 훈장이기도 하다. 신체발부 수지부모(사람의 신체와 머리털과 피부는 모두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훼손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를 주장하는 부모의 벽을 넘어, 33년 불법의 벽을 넘어, 터부시하는 시선의 벽을 넘어 자기다움을 잃지 않고 쓰러지지도 않고 살아온 흔적이 타투로 남았다. 이 좋은 타투를 황도는 모두에게 권한다. “기억을 몸에 새기는 신기한 경험”이라는 본령 외에도, 인간관계의 리트머스이자 소수자 연대의 가능성은 타투가 주는 뜻밖의 선물이다.
“타투는 사람들이 잘 선택하지 않는 취미잖아요. 하고 나면 굉장히 여러 반응이 있어요. 칭찬도 해주고 오지랖도 부리고 별로라고도 하고. 사회적으로 호불호가 있다 보니까 듣는 말들이 상처가 되죠. 그래서 다른 약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과 공감대가 형성돼요. 일생에 단 한 번도 소수성을 가진 적 없는 사람이 문신을 했다는 이유로 ‘문신한 xx’ ‘문신한 여자는 걸러’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듣죠. 그건 타인의 외모에 대한 혐오거든요. 사람을 겪어보지도 않고 판단하는 거고요. 네가 날 걸러? 내가 걸러!(웃음) 타투는 마이너로서의 삶을 선택해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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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 (작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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