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키넷: 해외 성인 사이트와 국내 법적 이슈 밍키넷 막힘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살성햇 작성일26-03-06 06:35 조회29회 댓글0건관련링크
-
http://91.kissjav.xyz
22회 연결
-
http://58.kissjav.blog
20회 연결
본문
키워드: 밍키넷, 성인 사이트, 성인 동영상, 성인 만화, VPN 우회, HTTPS 차단, 불법 사이트, 해외 서버, 대한민국 법, 포르노, 웹툰, 스포츠토토, 밍키넷 주소, 27
편집자주
매일 보도되는 국제 뉴스를 읽다 보면 사건의 배경이나 해당 국가의 역사 등을 알지 못해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5월 9일부터 격주 금요일에 만나는 '세계는 왜'는 그런 궁금증을 쉬운 언어로 명쾌하게 풀어주는 소화제 같은 연재물입니다.
2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 앞에 성조기가 휘날리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이 이스라엘과 함께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을 전격 공습했습니다. 단 한번 손오공릴게임예시 의 폭격으로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를 비롯한 이란 고위급 관료들이 다수 사망했습니다. 기습작전은 성공했지만, 이란의 주변국 무차별 보복 공격과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는 등 후폭풍도 커 보입니다.
어딘가 익숙한 모습입니다. 미국은 2001년 11월 아프가니스탄 카불을 5주 만에 점령, 승전을 선언했고 오션파라다이스릴게임 2003년 12월에는 전쟁 9개월 만에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체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중동에서 벌인 두 전쟁 모두 10년 넘게 이어지며 결국 미국의 족쇄가 됐습니다.
미국의 중동 직접 개입 역사는 40년이 넘고 그 상처도 깊습니다. 지금의 트럼프 대통령은 '더 이상 외국에 개입하지 말자'는 세력의 지지에 힘입어 상당수의 야마토게임무료다운받기 표를 얻은 인물입니다. 이들과의 약속을 저버리면서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에 개입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번 전쟁은 과거와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요? 그리고 미국은 중동에서 또다시 상처를 입고 나가는 역사를 반복하지는 않을까요.
세계는 왜
바다이야기
미국의 '직접 군사 개입' 방침, 이란 혁명이 만들었다
미국이 처음 중동에 직접 군사 개입을 시도한 계기 중 하나는 이란 혁명입니다.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중동 개입은 파병 등 직접적인 수단보다는 중앙정보국(CIA) 등 정보기관을 통한 간접적인 방식을 이용했습니다.
릴게임방법 정보기관 공작의 대표적인 사례가 1953년 모하마드 모사데크 이란 총리의 축출입니다. 모사데크 총리는 1951년 집권 후 영국계 회사에 장악돼 있던 이란 내 석유 산업을 국유화하는 등 민족주의·사회주의적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란에서는 소련의 지원을 업은 공산주의 성향 투데당의 영향력도 커지고 있었죠. 이에 불만을 가진 영국과 미국은 이란의 국왕 무함마드 리자 팔레비를 부추겨 왕정 복고 쿠데타를 벌입니다.
지난달 1일 테헤란의 전 주이란 미국 대사관의 담벼락 옆을 한 여성이 걸어가고 있다. 1979년 이란 대사관 인질 사건 이후 양국이 단교한 이래 이란은 구 대사관저에 반미 벽화를 그려넣는 등 프로파간다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테헤란=AFP 연합뉴스
그러나 이 결정은 26년 만에 부메랑으로 돌아왔습니다. 미국의 지원으로 전제군주정을 수립한 팔레비 왕조는 폭정과 부패, 급진적 서구화 정책으로 국민의 반발을 산 끝에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무너집니다. 석유는 다시 국유화됐고, 이란 국민들은 팔레비 정부를 지원한 미국에 큰 반감을 가지게 됐습니다. 여기에 그해 11월 미국으로 도피한 팔레비의 신병 인도를 요구하는 시위대가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을 점거, 444일간 외교관 등 미국인 52명을 두고 인질극을 벌이며 양국관계는 파탄에 이릅니다.
연관기사
• 팔레비 왕조도, 그들 쫓아낸 혁명도 이란 시민을 배신했다 [세계는 왜?]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12109400001415)
• '친서방' 이란을 '이슬람 신정국가'로 만든 호메이니는 누구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062502040004801)
카터 "페르시아만 지배권, 군사 동원해 수호"
중동 지역에서 팔레비 정권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을 잃은 데다, 경쟁 상대였던 소련이 남하정책을 펼치며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미국은 중동 정책을 '직접 개입'으로 바꿉니다. 1980년 1월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이 국정연설을 통해 발표한 '카터 독트린'에는 '페르시아만 지역의 지배권을 장악하려는 모든 시도는 미국의 핵심 이익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되며, 미국은 군사력을 포함해 필요한 행동으로 이를 저지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이 선언은 이후 미국의 대(對)중동 정책의 근간이 됐습니다.
카터 행정부는 그해 3월 미군에 중동 지역을 책임구역으로 하는 '신속배치합동태스크포스(RDJTF)'를 창설합니다. 카터 대통령의 뒤를 이어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집권하며 정권이 교체됐지만 미국의 중동 개입 기조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레이건 행정부는 1983년에는 RDJTF를 미국 중부사령부(CENTCOM)로 승격시켰습니다. 현재 이란 공격의 주축이 된 바로 그 부대입니다.
이라크 둘러싼 전쟁의 연쇄고리
미군의 중동 개입 역사. 그래픽=강준구 기자
다만 미국의 대규모 군사 개입이 즉각 이뤄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영토분쟁과 자국 내 시아파 준동을 이유로 이란을 기습하면서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초기 RDJTF와 중부사령부의 임무는 전면전보다는 이란·이라크전에 휩쓸린 쿠웨이트 유조선의 보호 임무 등 제한적인 전투를 중심으로 이뤄졌습니다. 미군이 중동에서 전투 경험을 쌓는 동안 미국은 이라크에 막대한 지원을 퍼부으며 이란 '힘빼기'에 나섭니다.
이란·이라크 전쟁은 8년간의 소모전 끝에 양국이 이전 국경으로 돌아가기로 합의하며 끝을 맺습니다. 그러나 전쟁은 또 다른 전쟁을 불러왔습니다. 오랜 전쟁으로 경제적 궁지에 몰린 이라크가 걸프 연안 왕정국가에 전쟁 중 쌓인 부채를 탕감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1990년 8월 2일 유전 지대를 노리고 쿠웨이트에 대한 기습 침공을 감행한 것입니다.
1991년 걸프전 도중 진행된 '사막의 폭풍' 작전 당시 미 공군 전투기들이 쿠웨이트의 불타는 유전지대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미 공군 제공
미국은 이라크에 즉각 철수를 요구했고 받아들여지지 않자 처음으로 대규모 중동 군사 개입에 나섭니다. '사막의 폭풍' 작전으로 유명한 걸프전입니다. 미국은 1991년 1월 이라크에 선전포고한 후 공군력을 동원해 이라크의 제공권을 장악해 이라크군을 사실상 제압하고 2월에는 지상군을 투입시켜 100시간 만에 쿠웨이트를 수복한 뒤 승리를 선언합니다.
걸프전은 '성공적인 전쟁'으로 평가받습니다. 우선 미군은 막대한 피해를 가정하고 철저히 전쟁을 준비했습니다. 쿠웨이트 수복과 이라크 남부 지역의 이라크군 섬멸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수립하고, 이를 달성한 직후 전쟁을 멈췄습니다. 전쟁 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동의를 받아 이라크를 외교적으로 고립시키고, 주변 국가들의 지지도 받았습니다.
20년간 美 발목 잡은 '테러와의 전쟁'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에 두 대의 항공기가 충돌한 이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미국은 걸프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2001년에 예상하지 못한 후폭풍이 들이닥쳤습니다. 9월 11일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에 두 대의 항공기가, 워싱턴의 미 국방부 청사(펜타곤)에 한 대의 항공기가 충돌한 것입니다. 항공기를 납치해 테러를 벌인 배후는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인 알카에다로, 이를 이끄는 오사마 빈라덴은 걸프전 이후 미국의 중동지역 개입과 주둔·친미정권 수립이 '이슬람 가르침에 반한다는' 이유로 테러를 주도했습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빈라덴과 연관이 의심되는 모든 국가를 표적으로 삼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하지만 걸프전과는 달리 미국은 두 전쟁을 쉽사리 끝맺지 못했습니다. 미국이 탈레반과 후세인 정권 축출은 물론 이후 지역의 안정화와 민주정부 수립까지 거창한 최종 목표를 세운 탓입니다.
미군은 걸프전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공군 전력을 적극 활용하면서 소수 정예 지상군만을 파병했는데, 부족한 병력으로는 탈레반·후세인 정권이 붕괴하면서 생긴 거대한 치안 공백을 메우지 못했습니다. 미국 주도로 세워진 아프간·이라크 정부는 실정을 반복하며 현지 주민들의 지지를 점차 잃어갔습니다. 게릴라 테러조직을 상대하면서 민주주의 경험이 일천한 두 나라에 무력을 통해 서구식 민주주의를 심겠다는 목표는 실현하기 어려웠습니다.
미군의 2011년 이라크 철수 후 권력 공백을 틈타 새로운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 이슬람국가(IS)가 준동하며 두 차례 내전이 이어졌습니다. 2021년 미군의 아프간 철수 후엔 탈레반이 다시 정권을 잡았습니다. 미국은 20년 동안의 전쟁 끝에 주요 목표 달성에 실패하며 사실상 무의미한 희생을 치른 셈이 됐습니다.
한 탈레반 조직원이 2022년 8월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전 주아프가니스탄 미국 대사관 앞에서 미군 철수 2주년을 기념하고 있다. 카불=EPA 연합뉴스
'제한적 전쟁'·'정권 교체'라는 상반된 목표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전쟁이 이라크전과는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2일 "(미국·이란 전쟁은) 이라크가 아니고, 끝없는 전쟁도 아니다"라며 "(전쟁 목표는) 미사일 위협과 이란 해군, 핵 무기의 파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멍청하지 않다. 20년간 20만 명이 (이란에) 머물 필요도 없다"며 개입을 일정 수준에서 멈추고 전쟁을 끝내겠다고 말했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이 2일 워싱턴 미 국방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하지만 미국이 스스로 원해서 이라크·아프간 전쟁을 초장기전으로 끌고 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달성하기 어려운 전쟁 목표와 지역 내 불안정성이 겹치며 '수렁'에서 발을 빼지 못한 것에 가깝습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란 전쟁의 진짜 목표가 '정권 교체'를 포함해 이란 정치체제에 타격을 입히는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의 사남 바킬 연구원은 "(지난달 28일 공격 목표에는) 이란 지도부의 거주지와 군사 지휘체계가 공격 대상에 포함됐다"며 "이는 국가 안보체제와 통치기구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하지만 공중전력을 활용한 공습만으로는 이란의 신정체제를 쉽사리 뒤흔들 수 없습니다. 이슬람혁명수비대를 중심으로 한 이란의 통치 구조가 워낙 튼튼한 탓입니다. 린다 로빈슨 미국 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하메네이가 아닌 혁명수비대 자체가 이란 정권"이라며 "비무장 상태의 이란 국민은 혁명수비대와 같은 군사 조직을 뒤집을 수단이 없고, 만일 미 지상군이 이란에 파병된다면 2003년 이라크 침공 당시처럼 (미군의) 임무 범위가 점점 확대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지상군 파병' 선택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2일 뉴욕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는 "나는 파병 ‘울렁증(yips)’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헤그세스 장관도 "앞으로 할 일과 하지 않을 일에 대해서는 논쟁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병력 파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죠. '제한적 전쟁'과 '정권 교체'라는 두 가지 상반된 목표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트럼프 행정부는 어떤 선택을 내리게 될까요?
연관기사
• 선제공격 당했는데... 이란은 왜 국제사회 지지를 받지 못하나 [세계는 왜?]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062501350000866)
이정혁 기자 dinner@hankookilbo.com
매일 보도되는 국제 뉴스를 읽다 보면 사건의 배경이나 해당 국가의 역사 등을 알지 못해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5월 9일부터 격주 금요일에 만나는 '세계는 왜'는 그런 궁금증을 쉬운 언어로 명쾌하게 풀어주는 소화제 같은 연재물입니다.
2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 앞에 성조기가 휘날리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이 이스라엘과 함께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을 전격 공습했습니다. 단 한번 손오공릴게임예시 의 폭격으로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를 비롯한 이란 고위급 관료들이 다수 사망했습니다. 기습작전은 성공했지만, 이란의 주변국 무차별 보복 공격과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는 등 후폭풍도 커 보입니다.
어딘가 익숙한 모습입니다. 미국은 2001년 11월 아프가니스탄 카불을 5주 만에 점령, 승전을 선언했고 오션파라다이스릴게임 2003년 12월에는 전쟁 9개월 만에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체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중동에서 벌인 두 전쟁 모두 10년 넘게 이어지며 결국 미국의 족쇄가 됐습니다.
미국의 중동 직접 개입 역사는 40년이 넘고 그 상처도 깊습니다. 지금의 트럼프 대통령은 '더 이상 외국에 개입하지 말자'는 세력의 지지에 힘입어 상당수의 야마토게임무료다운받기 표를 얻은 인물입니다. 이들과의 약속을 저버리면서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에 개입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번 전쟁은 과거와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요? 그리고 미국은 중동에서 또다시 상처를 입고 나가는 역사를 반복하지는 않을까요.
세계는 왜
바다이야기
미국의 '직접 군사 개입' 방침, 이란 혁명이 만들었다
미국이 처음 중동에 직접 군사 개입을 시도한 계기 중 하나는 이란 혁명입니다.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중동 개입은 파병 등 직접적인 수단보다는 중앙정보국(CIA) 등 정보기관을 통한 간접적인 방식을 이용했습니다.
릴게임방법 정보기관 공작의 대표적인 사례가 1953년 모하마드 모사데크 이란 총리의 축출입니다. 모사데크 총리는 1951년 집권 후 영국계 회사에 장악돼 있던 이란 내 석유 산업을 국유화하는 등 민족주의·사회주의적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란에서는 소련의 지원을 업은 공산주의 성향 투데당의 영향력도 커지고 있었죠. 이에 불만을 가진 영국과 미국은 이란의 국왕 무함마드 리자 팔레비를 부추겨 왕정 복고 쿠데타를 벌입니다.
지난달 1일 테헤란의 전 주이란 미국 대사관의 담벼락 옆을 한 여성이 걸어가고 있다. 1979년 이란 대사관 인질 사건 이후 양국이 단교한 이래 이란은 구 대사관저에 반미 벽화를 그려넣는 등 프로파간다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테헤란=AFP 연합뉴스
그러나 이 결정은 26년 만에 부메랑으로 돌아왔습니다. 미국의 지원으로 전제군주정을 수립한 팔레비 왕조는 폭정과 부패, 급진적 서구화 정책으로 국민의 반발을 산 끝에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무너집니다. 석유는 다시 국유화됐고, 이란 국민들은 팔레비 정부를 지원한 미국에 큰 반감을 가지게 됐습니다. 여기에 그해 11월 미국으로 도피한 팔레비의 신병 인도를 요구하는 시위대가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을 점거, 444일간 외교관 등 미국인 52명을 두고 인질극을 벌이며 양국관계는 파탄에 이릅니다.
연관기사
• 팔레비 왕조도, 그들 쫓아낸 혁명도 이란 시민을 배신했다 [세계는 왜?]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12109400001415)
• '친서방' 이란을 '이슬람 신정국가'로 만든 호메이니는 누구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062502040004801)
카터 "페르시아만 지배권, 군사 동원해 수호"
중동 지역에서 팔레비 정권이라는 든든한 지원군을 잃은 데다, 경쟁 상대였던 소련이 남하정책을 펼치며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미국은 중동 정책을 '직접 개입'으로 바꿉니다. 1980년 1월 지미 카터 당시 미국 대통령이 국정연설을 통해 발표한 '카터 독트린'에는 '페르시아만 지역의 지배권을 장악하려는 모든 시도는 미국의 핵심 이익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되며, 미국은 군사력을 포함해 필요한 행동으로 이를 저지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이 선언은 이후 미국의 대(對)중동 정책의 근간이 됐습니다.
카터 행정부는 그해 3월 미군에 중동 지역을 책임구역으로 하는 '신속배치합동태스크포스(RDJTF)'를 창설합니다. 카터 대통령의 뒤를 이어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집권하며 정권이 교체됐지만 미국의 중동 개입 기조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레이건 행정부는 1983년에는 RDJTF를 미국 중부사령부(CENTCOM)로 승격시켰습니다. 현재 이란 공격의 주축이 된 바로 그 부대입니다.
이라크 둘러싼 전쟁의 연쇄고리
미군의 중동 개입 역사. 그래픽=강준구 기자
다만 미국의 대규모 군사 개입이 즉각 이뤄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란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영토분쟁과 자국 내 시아파 준동을 이유로 이란을 기습하면서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초기 RDJTF와 중부사령부의 임무는 전면전보다는 이란·이라크전에 휩쓸린 쿠웨이트 유조선의 보호 임무 등 제한적인 전투를 중심으로 이뤄졌습니다. 미군이 중동에서 전투 경험을 쌓는 동안 미국은 이라크에 막대한 지원을 퍼부으며 이란 '힘빼기'에 나섭니다.
이란·이라크 전쟁은 8년간의 소모전 끝에 양국이 이전 국경으로 돌아가기로 합의하며 끝을 맺습니다. 그러나 전쟁은 또 다른 전쟁을 불러왔습니다. 오랜 전쟁으로 경제적 궁지에 몰린 이라크가 걸프 연안 왕정국가에 전쟁 중 쌓인 부채를 탕감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1990년 8월 2일 유전 지대를 노리고 쿠웨이트에 대한 기습 침공을 감행한 것입니다.
1991년 걸프전 도중 진행된 '사막의 폭풍' 작전 당시 미 공군 전투기들이 쿠웨이트의 불타는 유전지대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미 공군 제공
미국은 이라크에 즉각 철수를 요구했고 받아들여지지 않자 처음으로 대규모 중동 군사 개입에 나섭니다. '사막의 폭풍' 작전으로 유명한 걸프전입니다. 미국은 1991년 1월 이라크에 선전포고한 후 공군력을 동원해 이라크의 제공권을 장악해 이라크군을 사실상 제압하고 2월에는 지상군을 투입시켜 100시간 만에 쿠웨이트를 수복한 뒤 승리를 선언합니다.
걸프전은 '성공적인 전쟁'으로 평가받습니다. 우선 미군은 막대한 피해를 가정하고 철저히 전쟁을 준비했습니다. 쿠웨이트 수복과 이라크 남부 지역의 이라크군 섬멸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수립하고, 이를 달성한 직후 전쟁을 멈췄습니다. 전쟁 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동의를 받아 이라크를 외교적으로 고립시키고, 주변 국가들의 지지도 받았습니다.
20년간 美 발목 잡은 '테러와의 전쟁'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에 두 대의 항공기가 충돌한 이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미국은 걸프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2001년에 예상하지 못한 후폭풍이 들이닥쳤습니다. 9월 11일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에 두 대의 항공기가, 워싱턴의 미 국방부 청사(펜타곤)에 한 대의 항공기가 충돌한 것입니다. 항공기를 납치해 테러를 벌인 배후는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인 알카에다로, 이를 이끄는 오사마 빈라덴은 걸프전 이후 미국의 중동지역 개입과 주둔·친미정권 수립이 '이슬람 가르침에 반한다는' 이유로 테러를 주도했습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빈라덴과 연관이 의심되는 모든 국가를 표적으로 삼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하지만 걸프전과는 달리 미국은 두 전쟁을 쉽사리 끝맺지 못했습니다. 미국이 탈레반과 후세인 정권 축출은 물론 이후 지역의 안정화와 민주정부 수립까지 거창한 최종 목표를 세운 탓입니다.
미군은 걸프전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공군 전력을 적극 활용하면서 소수 정예 지상군만을 파병했는데, 부족한 병력으로는 탈레반·후세인 정권이 붕괴하면서 생긴 거대한 치안 공백을 메우지 못했습니다. 미국 주도로 세워진 아프간·이라크 정부는 실정을 반복하며 현지 주민들의 지지를 점차 잃어갔습니다. 게릴라 테러조직을 상대하면서 민주주의 경험이 일천한 두 나라에 무력을 통해 서구식 민주주의를 심겠다는 목표는 실현하기 어려웠습니다.
미군의 2011년 이라크 철수 후 권력 공백을 틈타 새로운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 이슬람국가(IS)가 준동하며 두 차례 내전이 이어졌습니다. 2021년 미군의 아프간 철수 후엔 탈레반이 다시 정권을 잡았습니다. 미국은 20년 동안의 전쟁 끝에 주요 목표 달성에 실패하며 사실상 무의미한 희생을 치른 셈이 됐습니다.
한 탈레반 조직원이 2022년 8월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전 주아프가니스탄 미국 대사관 앞에서 미군 철수 2주년을 기념하고 있다. 카불=EPA 연합뉴스
'제한적 전쟁'·'정권 교체'라는 상반된 목표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전쟁이 이라크전과는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2일 "(미국·이란 전쟁은) 이라크가 아니고, 끝없는 전쟁도 아니다"라며 "(전쟁 목표는) 미사일 위협과 이란 해군, 핵 무기의 파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멍청하지 않다. 20년간 20만 명이 (이란에) 머물 필요도 없다"며 개입을 일정 수준에서 멈추고 전쟁을 끝내겠다고 말했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이 2일 워싱턴 미 국방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하지만 미국이 스스로 원해서 이라크·아프간 전쟁을 초장기전으로 끌고 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달성하기 어려운 전쟁 목표와 지역 내 불안정성이 겹치며 '수렁'에서 발을 빼지 못한 것에 가깝습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란 전쟁의 진짜 목표가 '정권 교체'를 포함해 이란 정치체제에 타격을 입히는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의 사남 바킬 연구원은 "(지난달 28일 공격 목표에는) 이란 지도부의 거주지와 군사 지휘체계가 공격 대상에 포함됐다"며 "이는 국가 안보체제와 통치기구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하지만 공중전력을 활용한 공습만으로는 이란의 신정체제를 쉽사리 뒤흔들 수 없습니다. 이슬람혁명수비대를 중심으로 한 이란의 통치 구조가 워낙 튼튼한 탓입니다. 린다 로빈슨 미국 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하메네이가 아닌 혁명수비대 자체가 이란 정권"이라며 "비무장 상태의 이란 국민은 혁명수비대와 같은 군사 조직을 뒤집을 수단이 없고, 만일 미 지상군이 이란에 파병된다면 2003년 이라크 침공 당시처럼 (미군의) 임무 범위가 점점 확대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지상군 파병' 선택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2일 뉴욕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는 "나는 파병 ‘울렁증(yips)’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헤그세스 장관도 "앞으로 할 일과 하지 않을 일에 대해서는 논쟁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병력 파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죠. '제한적 전쟁'과 '정권 교체'라는 두 가지 상반된 목표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트럼프 행정부는 어떤 선택을 내리게 될까요?
연관기사
• 선제공격 당했는데... 이란은 왜 국제사회 지지를 받지 못하나 [세계는 왜?]
(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5062501350000866)
이정혁 기자 dinner@hankookilbo.co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